호반그룹 사옥(호반파크)[출처= 호반그룹]
호반그룹 사옥(호반파크)[출처= 호반그룹]

PF 지급보증·공사 이관만 부당지원으로 남긴 호반건설에 대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건설업계 내부거래 관행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공택지 전매와 입찰보증금 무이자 대여에 대한 과징금은 모두 취소되면서 '부당 내부거래' 프레임은 상당 부분 힘을 잃었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무상 지급보증과 계열사 간 공사 이관이 최종적으로 위법 판정을 받으면서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 두 영역에 쏠리고 있다.

우선 PF 지급보증이 정면에서 문제된 점이 가장 크다. 대형 개발사업에서 시공사가 시행사의 PF 대출에 보증을 서는 구조는 수십 년간 사실상의 전제처럼 굳어져 왔다.

금융기관은 시행사 단독 신용으로는 자금 집행을 꺼리기 때문에 브랜드와 재무여력이 있는 시공사의 책임준공 약정이나 지급보증을 요구해 왔고, 건설사들도 이를 감수하는 대신 사업 참여 기회를 확보해 왔다. 업계가 '관행'이라고 불러온 구조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구조를 특정 계열사의 사업 리스크를 그룹 전체가 떠안는 형태로 보고, 공정위의 부당지원 판단을 유지했다. 업계가 기대했던 '사업 특성상 불가피한 구조'라는 논리는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이로써 계열 시공·시행 체계 아래에서 이뤄지는 PF 보증은 앞으로 단순한 자금조달 수단이 아니라, 부당지원 심사의 핵심 타깃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건설사 입장에선 PF 보증 제공 기준과 보증 대가, 리스크 분담 방식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공사 이관에 대한 판단도 적잖은 여파를 낳고 있다. 그동안 건설사 그룹 내부에서 공사를 이관하는 것은 사업성 변동, 공정 조정, 인력·장비 배치 등 복합적 요인에 따른 '관리 차원'의 조정으로 이해돼 왔다.

이 과정에서 이익이 거의 남지 않거나 손실이 발생하는 프로젝트도 많아 "수익이 없다면 사익편취도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에서도 실질적인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사익편취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공사 이관을 경쟁 절차 배제 가능성과 경제적 이익 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해석해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단순한 실행주체 변경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이관 과정과 결과를 종합했을 때 특정 계열사에 유리한 구조가 형성됐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업계와 법조계 일각에서 "기존 기준선보다 한 걸음 더 나간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내부공사 배분 관행 전체가 규제 리스크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정위의 향후 행보도 건설사들을 긴장시키는 요소다. 과징금 총액의 상당 부분이 취소된 것은 부담이지만, 내부거래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PF 보증과 공사 이관에 대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만큼, 유사 구조를 가진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조사와 제재를 시도할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PF 시장이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선 상황에서 금융회사뿐 아니라 시공·시행사 간 지급보증과 일감 배분도 공정위 레이더 안으로 깊숙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건설사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배구조와 내부거래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계열사 간 PF 보증 제공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 내부공사 배분 과정에 어느 수준의 외부 경쟁 절차를 도입할지, 거래 조건과 가격 산정 근거를 어떻게 남길지 등이 모두 재설계 대상이다.

"관행대로 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더 이상 방어가 어렵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내부거래 심사 기구를 강화하고 이사회·사외이사 역할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판결은 호반건설 입장에서는 재무 부담을 줄이고 일부 핵심 의혹을 털어낸 결과이지만, 업계 전체로 보면 PF와 계열 공사 이관이라는 오랜 사업 관행에 법원이 분명한 경계선을 그은 사건으로 남게 됐다. 건설사들에게는 "숫자보다 구조를 바꾸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계열사 활용을 전제로 한 성장 모델에 기대기보다 내부거래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사업 구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남긴 여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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