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지난 2003년 국내에 자동차 자기인증제도가 도입됐다. 판매를 위해 정부의 인증을 획득해야 했던 번거로움을 없애고 제조사가 판매 제품에 직접 책임지고 판매하는 제도다.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자기인증제도가 부활했다. 대상은 배터리 전기차다. 그렇다고 전기차 모두를 인증하지 않는다. 해당 차종에 적용된 배터리만 떼어내 안전성을 인증하겠다고 한다. 

절차는 까다롭다. 배터리 또는 전기차 제작사가 국토부에 배터리 인증을 신청한다. 국토부는 성능시험대행자를 지정해 열충격, 연소, 과열방지, 단락, 과충전, 과방전, 과전류 등의 12가지 항목의 시험을 진행한다. 그리고 합격하면 인증서를 교부하고 안전성 인증 표시를 부착하도록 했다. 한 마디로 정부가 시험한 결과 배터리에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취지다. 관련해 국토부는 배터리 인증제가 전기차 안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터리 인증제의 효용성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12가지 시험을 해외에서 수행하거나 배터리 또는 완성차기업 내부적으로도 시행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정부가 인증한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도 궁금하다. 시험 결과 안전하니 적용해도 된다는 게 인증제이고, 제조사는 인증받은 제품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어서다. 

기본적으로 전기차 화재도 다른 일반 화재와 마찬가지로 크게는 사전 예방, 발화 억제, 확산 방지 단계로 구분한다. 여기서 배터리 인증제는 사전 예방 차원에 포함되는데 전기차 시판 전에 이루어지는 시험이어서 엄밀하게는 화재 예방과 조금 거리가 있다. 오히려 사용 중 화재 예방은 제조사가 적용하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연성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현재 배터리 구조에서 운행 중 외부 손상 또는 충전 및 주차 중에 화재가 발생하는데 사전 인증 효과가 있느냐는 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사전 인증제를 도입한 배경은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더욱 따갑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육지책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가 바로 배터리 사전 인증인 셈이다. 

이번 시범 인증제에 참여한 기업은 현대차와 기아 등의 승용차 제조사와 대동모빌리티 등의 전기 이륜차 제조사, 그리고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이다. 저마다 참여 배경이 있겠지만 이미 기정 사실로 확정된 인증제인 만큼 서둘러 참여하는 게 일종의 마케팅 차원의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인증제에 참여한 완성차기업 관계자가 들려준 얘기는 흥미롭다. “내연기관도 가연성 연료를 불에 태워 동력을 얻습니다. 따라서 화재에서 자유롭지 못하지요. 그런데 배터리 전기차도 가연성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한 화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연기관 화재는 제조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반면 배터리 전기차는 셀 제조사에게 일부 불명예 화살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증을 주도적으로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배터리 인증제에 앞서 국토부가 제조사에게 권고한 사안은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셀 제조사를 소비자가 알게 함으로써 셀 제조사가 품질에 보다 신경을 쓰라는 일종의 넛지 효과를 노린 셈이다. 그러나 셀 제조사의 입장은 확고하다. 부품 공급사로서 제조사가 요구한 품질 및 성능 기준을 충족시켰고, 그에 따라 공급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배터리 화재와 전기차 화재를 분리할 수 없는 만큼 화재의 1차 책임은 완성차 제조사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제조사 정보가 공개되는 만큼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배터리 사전 인증제도 어쩌면 배터리 셀, 그리고 팩 제조사에게 일종의 책임 경각심을 주려는 차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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