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이동을 위해 구매하는 대표적인 운송수단은 자동차다. 제품으로서 자동차를 선택할 때 소비자 고려 항목은 다양하다. 브랜드, 가격, 평판, 디자인, 안전성, 승차감, 효율 등이다. 이외 잔존가치, 사용 연료, 내구성도 감안한다. 최종 결정은 구매자 각각의 항목 가중치에 따를 뿐이다. 당연히 구매 후 사용 과정은 고민하지 않는다. 제품에 대해 불만은 있을지언정 기름을 넣거나 1회 주유 운행 거리 등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BEV(Battery Electric Vehicle)의 구매 우선 항목은 조금 다르다. 물론 제품 가치적 측면에서 디자인, 가격, 승차감, 안전성 등은 내연기관과 마찬가지로 고민한다. 그런데 내연기관에 없는 1회 충전 주행거리의 영향이 크다. 나아가 내연기관은 관심조차 없는 에너지 주입 시간도 중요 항목이다. 충전 속도가 빨라졌어도 내연기관 대비 여전히 많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그래서 BEV 산업은 크게 세 가지 측면이 동시에 진화한다. 

첫 번째는 제품 가격의 인하다. 제조사는 어떻게든 내연기관 수준의 소비자 가격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특히 전기 저장을 위해 필요한 배터리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데 그만큼 원가 절감 여지가 충분해서다. 내연기관 기술은 한계에 도달해 획기적인 개선 자체가 쉽지 않은 반면 배터리는 성능 향상 기술 접근 경로가 매우 많다. 

두 번째는 충전 속도의 증대다. 기름을 연료탱크에 가득 넣는 시간과 전기를 배터리에 완충하는 시간의 차이를 없애려 한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가능하지만 관건은 늘 돈이다. 초급속 충전기가 곳곳에 있어야 불편이 줄어드는데 이때 부담은 막대한 선행 투자다. 기본적으로 내연기관은 휘발유, 경유, LPG 등의 기름 성분 차이만 있을 뿐 주유 속도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기차 충전 시간을 줄이려면 전기를 보내는 충전기 성능 향상이 필요하고 배터리의 수용 능력도 개선돼야 한다. 그래서 충전 속도 증대는 이용 과정에서 가장 진화 속도가 느린 부문이다.  

세 번째는 바로 두 번째 항목의 인식 전환 전략이다. 충전 시간 단축 보폭이 느린 단점을 다른 항목의 장점으로 대체시키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V2L(Vehicle to Load)이다. 전기차 또한 이동의 본질은 내연기관과 같다. 그러나 배터리에 담긴 전기는 얼마든지 다른 기기에도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전기차를 흔히 ‘전기 배달차’로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인 전기는 전선을 통해 공급되지만 전기차는 무선으로 전기를 실어나르는 역할을 수행한다. 전선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서 전원 역할이 가능하다. 이동의 본질을 지키되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전기차의 유용성을 내세우려 한다. 

그러자 내연기관의 대응은 HEV(Hybrid Electric Vehicle)에 집중된다. 특히 EV의 약점(?)인 ‘1회 충전 주행거리’ 측면에서 HEV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EV 모드 비중을 조금씩 늘려 동일한 연료량으로 1,000㎞ 이상을 달성한다. EV 1회 충전으로 1,000㎞ 주행하려면 배터리의 전기 저장 공간이 커지는 단점을 공략한다. 배터리 공간(용량)을 키우면 당연히 가격도 올라 HEV가 부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EV 제조사는 오히려 주행거리 도전 의식이 생긴다는 반응을 보인다. 결국 어떻게든 내연기관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존 의지가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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