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패권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칼을 내부에서 휘두르는 장면이다.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께, 윤 대통령은 각국 정책이 자국 기업에 반도체 관련 힘 실어주기,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28억 달러 규모의 칩스법을 시행하고, 중국은 1조 위안 이상을 투자를 선언했다. 유럽연합은 430억 유로의 칩스법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부활에 사활을 걸었다.
모두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 상황에서 계엄 선포는 산업계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반도체 산업은 24시간 365일 멈춤 없이 가동돼야 하는 초정밀 산업이다. 단 1초의 정전이나 미세한 진동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계엄이 선포된 3일 오후 10시 25분부터 해제된 4일 오전 4시 30분께까지 6시간 가량 추락한 국가 이미지는 금전적으로 그 손실을 헤아리기 어렵다. 시간이 생명인 반도체 산업에서 모두가 사활을 건 지금, 계엄으로 잡아먹은 시간은 단순히 6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시간이다.
계엄이 해제됐지만, 계엄이 해제되기까지의 과정과 흘러가는 시간은 국가적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이는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 중인 기업에게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오판에서 비롯된 상징적 메시지가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고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실제 계엄 이후 코스피와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요동쳤다.
한국은 현재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과반 이상의 점유율에도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관련 반도체 기술 발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고, 이와 함께 발전하지 못할 경우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정부는 반도체 특별법을 제정하고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등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계엄령은 그동안의 노력을 무색게 하는 결정이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 중인 기업 입장에서 환율의 변동성은 일종의 리스크다. 대내외적인 정치 상황과 정책적인 변화 등도 일종의 리스크다. 질적 측면에서 기업 가치의 훼손, 양적 측면에서 원화 가치 하락에 따라 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 있어서다. 기업의 총수들이 도널드 트럼프 2기 집권을 앞두고 발품을 팔아가며 동분서주 움직이는 이유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원달러환율은 1400원 중후반대까지 급등하면서 연일 고점을 갱신했다.
반도체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끌어주고 기업이 따라가면서 집중해도 장밋빛 미래를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기업에서는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인재들을 자금력으로 빼가거나, 국가적 차원에서 산업을 육성시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 안보와 산업 정책은 상호 보완적이어야 하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안보와 정책의 목표가 결국 큰 틀에서 국민, 영토, 체제 즉, 자국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산업이자,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세계 각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와 육성을 위해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되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현 상황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는 지도자의 혜안도 요구된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수년간 쌓아온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