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13년 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제정됐지만, 정작 전통시장 활성화는 없고 대형마트는 힘들어진 상황이다. 유통법 사각지대에서 활개를 친 e커머스와 식자재마트만 반사이익을 보면서 사실상 유통법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 특히 이번에 대형마트 업계 2위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면서 유통법 개정 논의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편집자주>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이 결국 유통업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이도록 만든 주범이라는 지적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이 결국 유통업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이도록 만든 주범이라는 지적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첫 점포를 낸 지 27년 만에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되면서 의무 휴업일 지정, 영업시간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이 결국 유통업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이도록 만든 주범이라는 지적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유산법이 야기한 소비자 불편과 실효성 지적에 따라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입법 취지가 무색해진 것은 물론, 대형마트의 몰락에 쿠팡 등 e커머스만 급성장하기 쉬운 환경만 지속되면서 ‘제2의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우려까지 커진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혁신’ 골든타임 놓친 대형마트

대형마트 업계는 유통법이 대형마트의 혁신을 막았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위주로 구매 채널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음을 눈앞에 두고도 각종 규제에 묶여 경쟁력을 확보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소매시장은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쿠팡 등 e커머스 위주로 격변하기 시작했고, 대형마트 업체들은 유통법에다 거리두기 등 규제까지 겹치면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홈플러스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 영업적자에 빠진 시점도 이듬해인 2021년부터다.

이 같은 흐름은 자연스레 산업 지표에도 반영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연간 유통업체 매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유통업체 매출 중 대형마트의 비중은 2020년 17.9%에서 지난해 11.9%까지 떨어진 상태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온라인 비중은 46%에서 50.6%로 증가했다. 홈플러스를 비롯해 이마트, 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마트 산업을 이끌던 ‘마트 3대장’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23년 처음 매출 30조원을 넘긴 뒤 1년 만에 10조원을 불려낸 e커머스 업계 1위 쿠팡을 사실상 따라잡기 힘들게 됐다.

■초점나간 유산법에 C커머스 활개까지 ‘첩첩산중’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C-커머스(중국 전자 상거래) 업체들의 한국시장 진출도 이 같은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출처=픽사베이]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C-커머스(중국 전자 상거래) 업체들의 한국시장 진출도 이 같은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출처=픽사베이]

특히 유통법에 따른 영업시간 제한은 대형마트의 경쟁력 저하와 기업의 현금 출혈을 이끈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는 지역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오전 0∼8시(8시간)에는 새벽배송은 물론 온라인 주문 배송 자체를 금지한 규제였다.

각종 e커머스가 새벽배송을 무기로 충성 고객을 끌어들이는 동안 대형마트들은 아예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를 포기해야 하거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세우는 등 추가 투자를 해야 했다. 영업시간 제한 규정 탓에 마트 인프라를 통한 심야시간대 물류 작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C-커머스(중국 전자 상거래) 업체들의 한국시장 진출도 이 같은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각종 유통 규제에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자체가 변화해버린 상황에서 알리, 테무 등 중국 업체까지 국내에 공격적으로 진출하자 대형마트의 어려움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생존을 위해 연휴, 기념일 등 각종 이벤트를 빌미로 출혈적인 할인 경쟁을 벌여오기도 했으나 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에 소비자들이 기대만큼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결국 경영난을 가중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형평성 있는 규제 재도입 필요” 목소리 높아져

결국 대형마트 업계는 유산법의 재검토와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형평성 있는 규제 재도입만이 대형마트를 비롯한 오프라인 채널을 회생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출처=연합]
결국 대형마트 업계는 유산법의 재검토와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형평성 있는 규제 재도입만이 대형마트를 비롯한 오프라인 채널을 회생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출처=연합]

결국 대형마트 업계는 유산법의 재검토와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형평성 있는 규제 재도입만이 대형마트를 비롯한 오프라인 채널을 회생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 보호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오프라인 산업 자체를 급속도로 잠식시키고 있다고 지적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수박 겉 핥기 방식의 대형마트 규제가 당초 목적이었던 전통시장 활성화를 전혀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공공연해졌다. 이미 유통시장 자체가 온라인 위주로 상당 부분 재편된 상태이긴 하나, 대형마트들이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회복하고 여전히 오프라인 채널을 활용하는 소비자 편익도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전통시장을 살리고자 대형마트를 죽일 게 아니라 전통시장은 오히려 전통시장 스스로 자체적인 서비스 품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변화하는 유통 환경에 맞는 새로운 규제와 지원책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C-커머스에 대형마트는 완전히 잠식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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