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13년 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제정됐지만, 정작 전통시장 활성화는 없고 대형마트는 힘들어진 상황이다. 유통법 사각지대에서 활개를 친 e커머스와 식자재마트만 반사이익을 보면서 사실상 유통법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 특히 이번에 대형마트 업계 2위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면서 유통법 개정 논의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편집자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휴일 안내문이 걸려 있다. [출처=연합뉴스]](https://cdn.ebn.co.kr/news/photo/202503/1654051_666908_858.jpg)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은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확립해 소비자를 보호하며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은 지난 1997년 제정됐으며, 2012년 개정을 통해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을 규정했다.
이 같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상생발전 및 유통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취지로 하는 유통법은 최근 유통 환경의 변화와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면서 재검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미 해외 주요 나라들은 유사한 법안을 폐지하거나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프랑스는 1970년대 소형 점포를 보호하기 위해 ‘로와이에법’을 제정하고 대형 점포의 출점을 제한했지만 실효성 부족과 경제적 부작용으로 인해 12년 만에 관련 법을 폐지한 바 있다. 일본 역시 대규모 소매점포의 영업을 제한하는 ‘대점법’을 도입했으나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되자 2000년에 해당 법을 폐지하고 최소한의 규제로 전환했다.
현재 국내 유통 환경의 변화도 유통법 개정의 필요성에 불을 지피고 있다. 국내 유통시장은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과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로 인해 대형마트의 시장 점유율이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전통시장의 활성화는 미미했으며, 오히려 대형마트의 폐점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온라인 쇼핑으로의 소비자 이탈이 증가했다.
반면 대형마트가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일부 드러났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대형마트 영업 규제의 변화와 경제적 효과’ 연구에 따르면, 2023년 대구시와 청주시에서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변경한 결과 대형마트 주변 상권의 평균 매출이 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를 방문한 소비자들이 인근 식당을 함께 이용하면서 매출 증가 효과를 보인 것이다.
온라인 유통업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규제를 받지만 온라인 유통업체는 이러한 규제에서 제외돼 24시간 영업이 가능해 불공정한 경쟁에 내몰리는 실정이다.
대형마트 폐점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유통학회의 ‘유통규제 10년 평가 및 상생방안’ 연구분석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1개 점포 폐점 시 반경 0.1㎞ 내 주변 상권의 매출이 4.82% 감소하고, 12㎞ 내에서는 2.8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형마트 1개 점포 폐점으로 인해 직접 고용 945명과 주변 상권에서 429명의 일자리가 감소해 총 1374명의 고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변화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에 소비자들은 온라인 쇼핑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짙은 가운데 전통시장 보호라는 규제의 본래 목적과 달리 온라인 시장의 성장만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 맞춰 유통법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와 주요 쟁점’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국내 유통시장의 상황이 급속히 변하는 상황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을 주된 법적 수단으로 하는 거래관계 규제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대규모유통업법이 시장과 경제 여건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일률적·정태적으로 적용돼 제도적 고착화와 판매 촉진 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도 “현재의 유통법은 시시각각 변모하는 유통 환경과 소비자 니즈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새어 나온다”며 “이에 따라 기존 전통시장 보호화 대형 유통업체의 균형 있는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관련법의 재검토와 함께 현실에 닿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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