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 금융윤리인증센터 교수
윤성식 금융윤리인증센터 교수

21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9.42%를 얻어 대통령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를 기록했다. 언제나 그렇듯 국민들의 이념적 성향은 거의 반으로 갈라진 느낌이다. 특히 영남과 호남의 지역 편향 현상은 여전히 극명했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가 2022년 실시한 '국가 정치 양극화 실태' 조사에서 한국은 응답자의 90%가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들 간의 충돌이 심각하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실감 날 만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 양상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면 불신과 적대감이 증폭되어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감이 약화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력이 어려워져 국가적 문제 해결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갈등 해소를 위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들에게는 정치적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등 그 부작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일까. 지난 6월 12일 공표된 <미디어토마토> 정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최우선 과제'를 묻는 질문에 국민들은 '민생 경제 회복', '계엄 내란 종식'에 이어 3순위로 '국민 화합 통합'을 꼽았다. 국민들 역시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혐오와 분열을 끝내고 통합을 이룬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하며, 여야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 푸른색과 붉은색이 섞인 넥타이를 매고, 전국 각지의 재료들로 만든 비빔밥과 오색국수를 준비하는 등 곳곳에서 통합과 협치 의지를 보인 점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여야 갈등 양상을 보면 "낡은 이념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고 이제부터 진보의 문제도 없고 보수의 문제도 없다"는 대통령의 공언이 공염불로 끝날까 그저 불안스럽기만 하다. 역시 순조로운 통합과 협치는 쉽지 않은 숙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지역과 세대와 계층 간의 다양한 의견과 이념이 조화롭게 통합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아래와 같이 '통합의 통합에 의한 통합을 위한'이라는 제목의 미니픽션(짧은 소설)을 헌정하고자 한다.

*윤성식 교수는 2011년 계간 '문학의봄'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이다.


동쪽의 대경시와 서쪽의 광전시로 구성된 K 왕국에서 총선 결과가 발표됐다. 오랫동안 도사리고 있던 지역주의가 이번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역구 254석이 보민당과 민진당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양분되었던 것이다.

보민당은 대경시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보수 정당, 민진당은 광전시의 지지를 받는 진보 정당이다. 두 정당은 전통과 안정을 중시해야 한다느니, 사회적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느니 하며 서로 사납게 으르렁댔다.

두 진영을 지지하는 대경시와 광전시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은 상대 도시를 저주하고 혐오했다. 심지어 서로의 영역에 침투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다. 반목과 불화의 성벽은 도저히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견고해져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역 이기주의와 아집의 몸집은 점점 커지고,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갈등 구조는 더욱 깊어만 갔다. 국민 통합과 지역 균형 발전은 맨날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K 왕국의 국왕이 거듭된 고뇌를 끝내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바로 '통합의 통합에 의한 통합을 위한 국왕 긴급 특별 명령' 발동.

긴급 특별 명령의 첫 번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노골적이고 악랄하게 이용하여 당선된 대경시 출신 H 국회의원과 광전시 출신 K 국회의원의 자격을 영구히 박탈했다.

대경시의 H 의원은 선거 유세장에서 "우리 지역 경제가 안 돌아가는 것은 순전히 광전시 출신들 때문이다!"라며 맹목적 지역 민심을 이용하고 분열을 부추겼다. 광전시의 K 의원은 "대경시 출신 보민당 후보에게 표를 주면 나라가 망한다!"고 외치며 심대한 지역 갈등을 유발했던 것이다.

이후 모든 선거에서 지역주의를 내세워 당선되려는 정치인은 없었다. 지역감정이 아니면 기댈 데가 없는 정치인들도 자취를 감췄다.

두 번째 정책은 정치인이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출마하지 못하게 한 것! 이는 지역주의를 이용한 당선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서 진정한 통합의 기반을 마련해 보자는 의도였다. 정치인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출신지에서 쉽게 배지를 달면 절실함이 사라져 자신의 안위만 챙기거나 군림형 권력자가 되기 십상이다.

국왕은 "정치인이 출신 지역과 부조리하게 유착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모토를 표방했다. 정치계가 광폭했다. 그러나 국왕은 대경시와 광전시 출신 정치인이 서로 상대 도시에 교차 출마하는 정책을 끈질기게 고집했다.

정치인들이 지역주의와 정실에서 벗어나 성실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정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낯선 상대 지역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오로지 그 지역의 성장과 발전 전략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대경시와 광전시의 미혼 남녀가 서로 교차하여 결혼토록 하는 정책! 혜택은 파격적이었다. 두 도시의 남녀가 서로 결혼하면 결혼 축하금 삼억 원, 영구 임대주택 무료 제공, 자녀의 육아부터 대학 졸업까지 무상 지원. 이런 혜택을 마다하고 결혼을 외면할 청춘 남녀는 없었다.

방송 매체와 옥외 전광판에는 결혼 혜택이 쉼 없이 홍보되었다. 그리하여 두 도시 청춘 남녀들의 결혼식이 폭증했다. 정부 지원을 받은 결혼정보회사들은 결혼 주선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성격 맞춤형 주선으로 결혼 만족도는 드높았다. 산후조리원은 아기들로 넘쳐났다. 이혼하면 지원받은 혜택을 모두 반납하고 거액의 제재금까지 물어야 했기 때문에 이혼율은 제로였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은 동서 남녀의 화합을 촉진하는 강력한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평소 아웅다웅하던 두 도시의 어른들도 정겨운 사돈 관계로 자연스럽게 화해했다. 국민들은 새로운 변화와 통합적 문화에 서서히 동화되어 갔다.

마지막 네 번째 정책은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온 두 도시의 명칭을 서로 맞바꾸는 것! 이제부터 모든 국민들은 대경시를 광전시로, 광전시를 대경시로 불러야 했다.

그러자 고향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시민들이 불같이 반발했다. 많은 시위가 일어났다. 온라인에는 명칭 변경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명칭 변경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투입됐다. 그러나 지역 통합을 염원하던 국왕은 결코 정책을 굽히지 않았다.

도시 명칭 변경 후, 두 도시 사람들이 서로 "대경시 개새끼들!", "광전시 미친놈들!"이라고 욕을 하면, 이게 상대 도시민에 대한 욕인지 자신들에게 하는 욕인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지도는 그대로인데 도시 명칭만 바뀌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문득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도시 명칭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며 시위 강도를 높여갔다. 그러나 국왕은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고름을 짜내는 심정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명칭 변경 정책은 점차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비난과 욕설도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세상살이에 지역 명칭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행복한 상생을 위해서는 서로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사실도 체득했다.

그건 일종의 해탈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고 발전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대경시와 광전시는 통합되어, 두 도시 명칭의 첫음절을 따서 '대광시'라고 불리게 되었다. 대경시의 '대경 국제 영화제'는 '대광 국제 영화제'로 바뀌었고, 광전시의 '광전 음식 축제'는 '광대 음식 축제'로 새롭게 명명되었다.

이 변화로 인해 지역주의의 벽은 허물어지고 두 도시의 문화는 완전히 융합되어 갔다. 사람들은 서로 마음을 열고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함께 살고 있는 이 땅은 도시의 명칭이나 지역감정으로 난도질할 수 없는 하나의 큰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이제 대경시와 광전시가 서로 다른 도시였다는 사실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마침내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 통합을 평생 소망하던 국왕의 염원이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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