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사진 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출처=각 사 제공]](https://cdn.ebn.co.kr/news/photo/202507/1672290_688251_2627.jpg)
재계 총수들이 '美 관세 장벽' 돌파를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미국과의 막판 관세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워싱턴으로 향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후 테슬라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대형 수주를 이뤄내며 미국 내 고객 기반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한·미 간 고율 관세 유예 시한(8월 1일)을 앞두고 재계가 동시에 움직이면서 산업계 이목이 쏠린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전날인 28일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김 부회장의 워싱턴행은 정부의 대미 통상 협상을 직접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김 부회장은 다음달 1일까지 미국에 체류하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주요 통상 라인과 함께 실무 협상에 힘을 보탠다.
김 부회장이 투입된 배경에는 정부가 미국 측에 제안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있다. 한국 조선사의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금융·기술 협력 패키지를 담은 '마스가'는 관세 협상 테이블에 올라간 주요 카드다.
한화그룹은 올해 초 미국 필라델피아의 조선소를 인수해 '한화필리십야드(필리조선소)'를 출범, 선제적으로 미국 시장에 발을 디뎠다. 이번 협상에서는 이 조선소에 대한 △추가 투자 △현지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등 후속 계획도 제안될 것으로 알려진다. 김 부회장은 이러한 방안을 직접 조율하며 실무 논의에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가' 프로젝트에는 한화 외에도 여러 국내 민간 조선사가 참여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위한 대출 및 보증 등 금융 지원에는 한국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공공기관 참여도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는 이미 미국 상무부와의 고위급 논의에서 마스가를 공식 제안했고, 미국 측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같은 시기 삼성전자는 미국 내 고객 기반 확보에 성과를 올렸다. 삼성은 전일 공시를 통해 "2033년까지 총 22조8000억원(165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글로벌 대형 고객사와 체결했다"고 밝혔다. 단일 고객사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해당 고객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 'AI6' 생산 수주다. AI6는 자율주행 기능은 물론, 자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 △AI 슈퍼컴퓨터 '도조(Dojo)' 등에도 적용될 통합형 칩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삼성 텍사스 공장은 테슬라 AI6 칩 생산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며 "이 계약은 최소 165억 달러지만, 실제 규모는 몇 배 더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AI 칩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테슬라뿐 아니라 애플,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도 위탁 생산처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삼성의 대형 수주는 단발성 계약이 아닌, 향후 추가 수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테슬라가 준비 중인 Dojo 2 프로젝트가 가시화될 경우 삼성과의 협력 범위도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은 이 회장이 지난 2월 2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전장·헬스케어·공조 등 신규 사업 인수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테슬라와의 장기계약은 삼성의 미국 텍사스 파운드리 공장에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한 동시에,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세 우회 전략'으로도 주목받는다. 미 정부가 반도체를 포함한 전략 품목에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공급망 기여도를 강조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 부회장의 방미 행보와 이 회장의 대미 수주 성과가 맞물리며 국내 재계는 고율 관세라는 미국발 통상 압박을 뚫기 위한 실질적 카드들을 동원하고 있다.
관세 재협상 마감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일본·유럽(EU)이 각각 5500억 달러, 6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로 이미 협상 타결에 성공한 만큼, 한국 역시 조선·반도체 양축을 중심으로 '최종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내 공급망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화·삼성을 중심으로 전략 산업에 대한 미국 내 투자와 수주 성과는 향후 통상환경 변화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레버리지"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유럽이 이미 거대 투자 패키지로 협상을 타결한 만큼, 한국도 선제적 산업 기여 모델을 제시해야 협상력이 생길 것"이라며 "관세라는 불확실성을 뚫기 위해 총수들이 직접 움직이는 것도 결국 생존을 위한 판단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