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스위스가 건국기념일을 맞이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산 수입품에 39%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축제 분위기를 뒤흔들었다. 이 관세율은 전 세계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스위스 정부와 경제계는 즉각적인 반발에 나섰다.

2일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대통령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협상이 결렬됐음을 인정했다. 새로운 관세는 오는 8월 7일부터 발효되며, 스위스산 시계, 정밀 기계, 커피 캡슐, 초콜릿 등 다양한 품목에 적용될 예정이다. 스위스 수출업계는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협상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켈러-주터 대통령은 지난 1291년 스위스 연방 창립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관세 때문에 명절이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협상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스위스 경제부 장관 기 파멜린은 "우리는 특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모든 수입품에 산업 관세를 철폐하며 자유무역을 지향해 왔다. 특히 미국과는 정치적 중립성과 경제 협력 관계를 토대로 긴밀한 협력을 구축했었다. 스위스 기업들은 미국 내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제약 대기업인 로슈와 노바티스가 그 중심에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스위스와의 무역 적자를 문제 삼고 있다. 켈러-주터 대통령에 따르면 트럼프는 무역 불균형이 고관세 결정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스위스의 대미 수출 중 상당 부분은 금괴와 정제된 귀금속으로, 이는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이들 품목이 무역통계 왜곡의 원인이며, 무역수지에 포함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상황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스위스의 대미 수출품은 이제 유럽연합(15%), 영국(10%)보다 훨씬 높은 관세를 부담하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 소비자 가격 상승과 함께 스위스 제품의 시장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최대 경제 단체 이코노미스위스는 "관세로 인해 기업 경쟁력과 투자 환경이 훼손된다"고 경고했다.

고급 시계산업은 이미 타격을 입고 있다. '스위스 워치스'의 주가는 금요일 하루 만에 7% 급락하며 수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바클레이즈는 이번 조치가 "회사의 실적에 심각한 역풍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정밀 공작기계를 제조하는 스위스 엔지니어링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스위스멤은 "회원사 중 25%만이 이전 31% 관세를 고객에 전가할 수 있었고, 39%는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많은 수출업체들은 이미 올 초부터 미국으로의 조기 물량 출하에 나섰다. 실제로 스위스 시계 수출은 3~5월 사이 140%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이 효과도 일시적이라는 게 업계 판단이다. 이후 수출은 전반적으로 둔화됐으며, 유럽연합, 중국 등 다른 시장 수요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정치적 혼선도 더해졌다.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스위스 국경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관세 발표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같은 이중적 태도는 스위스 내 불만을 더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중심 행정 스타일이 상황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슈테판 레게 장크트갈렌대학교 교수는 "백악관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트럼프가 동의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며 "그는 긴장을 즐기며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스위스 제약 산업은 또 다른 압박을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에 미국 내 약값 인하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스위스산 의약품이 특정 품목별 관세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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