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신임 사장[ 사진=현대엔지니어링]](https://cdn.ebn.co.kr/news/photo/202501/1649556_661925_5942.png)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신임 사장이 수익성 개선 전략의 일환으로 '빅배스(Big Bath·대규모 손실 반영)' 카드를 꺼냈다. 주택사업 회복세가 요원한 가운데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 무려 조(兆) 단위에 이르는 잠재적 손실이 인식되자 내놓은 회심의 자구책이다. 갑작스런 빅배스 단행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한편에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는 신임 주우정 사장은 기아 재경본부장(CFO) 시절, 강도 높은 빅배스 단행 후 기아가 수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매년 경신하는 기반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올해 연간 실적 전망을 두고, 단순 빅배스 기저 효과에 따른 흑자전환이 아닌 장기적 성장세의 기반을 다지는 원년이 될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난해 연결기준 잠정실적은 매출액 14조 7653억원, 영업손실 1조 2361억원 수준이다. 매출액은 10.3%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영업적자는 현대차그룹 편입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1914억원을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현대엔지니어링은 4분기에만 1조3000억원의 적자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잠재부실을 한꺼번에 회계장부에 반영하는 '빅배스'를 단행한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빅배스로 모회사 현대건설 역시 피해를 입었다. 영업적자규모 1조 2361억원이 반영되면서 현대건설 역시 영업적자로 돌아섰으며 규모는 1조 2209억원에 이른다. 별도 기준 현대건설 영업손실은 1722억원으로, 적자가 애초 불가피했지만 현대엔지니어링 탓에 1000억원 대에 그칠 손실 규모가 수조원 대로 불어난 것이다.
업계에선 시공능력평가순위 4위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의 빅배스 결정으로, 올해 수장 교체에 나선 건설사 위주로 상반기 내 빅배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건설사들의 연쇄 실적 부진은 물론, 기업 IR의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주식 시장의 불안정성까지 확대될 거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현대엔지니어링의 이번 빅배스가 회사와 시장에 '기회'가 될 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저 일회성의 '기회비용'으로, 단기적 손실 및 시장 내 피해는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과 안정을 가져오는 결과가 될 거란 분석이다.
이같은 장밋빛 전망은 이번 빅배스를 주도한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신임 사장이과거 성취한 업적에서 비롯된다.
주우정 사장은 현대차그룹 대표적 재무전문가로, 기아 CFO 역임 시절에도 강도 높은 빅배스 단행 이후 본격적인 실적 개선 전략을 통해 기아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어낸 바 있다. 당시 주 신임 사장은 2019년 기아 CFO에 오른 후, 1년 만인 2020년 1조 2500억원에 이르는 품질비용을 실적에 반영하는 빅배스를 단행했다. 갑작스런 조 단위 손실처리에 기아 노조는 물론 주식 시장과 국내외 신용평가사들까지 기아의 '밀어내기식' 재무 전략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기아는 빅배스 단행 후 1년 만인 2021년, 전년(2조 665억원) 대비 2배에 가까운 5조 65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7조 2331억원, 11조 607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연신 갈아치웠다. 늘어난 이익 규모만 보더라도 단순히 빅배스에 따른 기저효과가 아닌 펀더멘털 개선 및 강화 노력이 함께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아는 빅배스 이후 전기차 중심의 신차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외형 확대와 내실 성장을 동시에 이뤄냈다.
물론 일각에선 자동차 품질비용이라는 일회성 비용 반영과 언제든지 PF우발채무 추가손실 우려가 큰 건설 업계와는 차이가 커 주우정식(式) 메스 전략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빅배스의 성공은 결국 "밀어내기 후 펀더멘털 개선 여부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주 사장이 제로베이스가 된 현대엔지니어링의 사업체질을 얼마나 탄탄한게 바꿔놓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가려질 거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업 환경 저하, 해외프로젝트에서 인식된 대규모 손실 반영 등을 고려하면 현대엔지니어링이 단기 내 사업 경쟁력을 회복하거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만 주우정 사장의 고강도 재무전략 중 하나인 빅배스 후 수익성 중심 사업 구조 구축 여부가 성공적으로 마련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며 "이번 현대엔지니어링의 회심의 자구책이 단순한 손실 처리를 넘어 회사의 장기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