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시공능력평가 4위이자 현대건설의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10년 만에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조 단위 영업적자로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지난 2월 발생한 고속도로 붕괴 사고로 인해 최소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 여기에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면서 영업정지 처분 가능성이 거론되며, A급 기업으로의 강등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와 NICE신용평가(이하 NICE)는 지난 2월 현대엔지니어링의 신용등급(AA-) 전망을 각각 부정적, 하향검토대상으로 조정했다. 한기평은 1~2년 안으로, NICE는 6개월 안으로 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등급이 강등되면 A+등급으로, 2015년 이후 10년 만에 A급 회귀다.
두 신평사의 이같은 평정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작년 말 1조4315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따른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원가 상승분 1조1000억원 가량을,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프로젝트 공사비 상승분을 회계 장부에 한꺼번에 반영하며 조 단위 적자를 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작년 9월 114.8%에서 12월 말 243.8%까지 치솟았고, 이는 수조원의 영업적자와 함께 현대엔지니어링의 등급 전망이 조정되는 단초가 됐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시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실질적인 등급 강등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영업적자의 경우 새 경영진 취임에 맞춰 이뤄진 '빅배스(Big Bath, 대규모 손실 정리)’ 성격이 짙었던 데다, 건설 경기가 불황이긴 해도 현대엔지니어링의 탄탄한 사업적 기반, 입지 등을 고려할 때 단기 내 수익성 및 재무안정성 회복은 어렵지 않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월 25일 서울-세종 고속도로 공사 중 교각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으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은 추가 비용 부담과 법적 리스크에 직면했다.
시장에선 이번 사고로 현대엔지니어링이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최소 300~350억원에서 많게는 2000억원까지 예상하고 있다. 배세호 IM증권 애널리스트는 "세종-안성 간 건설공사의 9공구는 총 4.1㎞이며 사고 현장은 540m 정도로 공정률 56.6%에서 해당 구간만 전면 재시공할 경우를 비용은 300억~35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최악의 경우 전체 구간 4.1㎞에 대한 전면 재시공에 나설 경우 비용은 2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고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와 관련,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령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법 적용이 확정될 경우 벌금 부과는 물론 영업정지 처분까지 가능하다.
재시공 비용에 벌금 부과, 영업정지 가능성까지 거론되면 신용평가사들은 현대엔지니어링의 등급 강등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출처=한기평, NICE]](https://cdn.ebn.co.kr/news/photo/202503/1654418_667317_1852.png)
더욱이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미 신용평가사들이 정한 등급 강등 트리거에 도달한 상태다. 먼저 한기평의 경우 현대엔지니어링 등급 하향 변동 요인으로 ▲진행사업의 질적 수준 저하 ▲ EBITDA(상각전 영업이익) 마진 5 이하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현대엔지니어링의 EBITDA 마진은 2.0로, 등급 강등 기준에 부합한다. NICE는 ▲영업이익/매출액 2% 미만이거나 ▲부채비율 15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되는 경우를 등급 하향 변동 요인으로 내걸고 있는데 작년 말 기준으로 현대엔지니어링 영업이익/매출액은 -8.4%까지 낮아졌고, 부채비율 또한 243.8%에 이른다.
정량적 평가 측면에서 이미 등급 강등 트리거에 도달한 가운데 이번 사고로 정성적 평가조차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서 A등급으로의 강등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정량적 기준에서 강등 트리거를 충족한 상황에서 기업 신뢰도와 사업 리스크까지 고려하는 정성적 평가에서도 부정적인 요소가 추가됐다"며 "향후 사고 수습 및 손실 보전 대책, 영업정지 여부 등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신용등급 강등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