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병은 제때 치료해야 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화를 부를 수 있다. 심하면 큰 병으로 번져 죽음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병이 생겼을 때 치료 시점을 잘 붙잡고 알맞은 치료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있다.
이는 우리 시대를 병들게 하는 사회적 문제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간과하고 사회의 병적 현상을 묵히는 것은 개인의 병을 방치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금융 부문에도 경영상태가 취약한 금융기관을 제때 치료하여 쾌유시키는 제도가 있다. 바로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근거한 적기시정조치 제도이다.
적기시정조치란 자기자본비율이나 경영실태평가등급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등 경영상태가 취약한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예방하고 건전한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금융감독당국이 적기(適期)에 시정조치를 명하는 제도이다. 기준 미달 정도에 따라 경영개선권고, 경영개선요구, 경영개선명령의 세 단계 조치가 있다.
감독당국의 경영실태평가(CAMEL)는 저축은행의 △자본적정성(Capital adequancy) △자산건전성(Asset quality) △경영관리능력(Management capability) △수익성(Earnings) △유동성(Liquidity)의 5개 부문을 각각 평가한 후 이를 종합하여 등급을 산정한다. 1등급(우수), 2등급(양호), 3등급(보통), 4등급(취약), 5등급(위험)으로 구분한다.
평가결과 종합등급이 4~5등급인 경우에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하며, 종합등급이 3등급이더라도 자산건전성 또는 자본적정성 등급이 4등급 이하일 경우에는 적기시정조치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경영개선권고를 부과하게 된다.
금융기관이 적기시정조치를 부과받으면 인력 및 조직 운영 개선, 경비 절감, 자산 처분, 자본 확충 등의 경영합리화 조치를 단행하고 심하면 임원 교체, 주식소각, 영업정지, 영업양도, 합병, 계약이전 등 괴사된 조직에 칼을 대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건전한 금융기관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적기시정조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와 알맞은 치료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이르거나 늦어서는 안 된다. 또 시기가 적절하더라도 과잉 치료나 과소 치료도 피해야 한다. 비용 낭비와 질병 악화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고, 자칫하면 건강한 살점까지 베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감독당국은 경영상태가 취약한 저축은행에 대해 연거푸 적기시정조치를 단행했다. 지난해 12월 A 저축은행과 R 저축은행에 경영개선권고를 부과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S 저축은행에 경영개선권고를 부과했다. 모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에서 발생한 거액 부실로 인해 자산건전성 등급이 4등급(취약)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건설 경기 침체 여파로 2024년 말 저축은행 PF대출 연체율이 7.29%로 금융권 평균인 3.42%를 훨씬 초과하는 상황이니 이러한 조치는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경영실태평가등급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경영개선권고 조치가 두 분기를 훌쩍 지난 올해 3월에 이루어진 것은 과연 ‘적기(適期)’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과거 사례와 견주어 볼 때 조치 간격이 길어지고 지체된 느낌마저 든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감독당국은 부실저축은행에 대해 신속하게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2011년 6월 말 기준으로 7~8월 중 경영진단을 실시했다. 부실이 드러난 7개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분기를 넘기지 않고 바로 9월에 적기시정조치를 단행하여 빠르게 구조를 개선했다. 즉, 병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수술에 들어갔던 것이다.
금융기관이 적기시정조치를 부과받으면 경영상의 제반 권리와 활동이 제약되므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겠지만, 조치 시기를 좀 더 민첩하게 붙잡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자칫하면 적기를 놓친 사이에 부실이 심화되어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금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알맞은 시기와 적절한 처방을 다투는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지연되는 사이에 국민들은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져 대치 국면이 격화되고 있다. 결원된 헌법재판관의 후임 임명 시기 문제로 행정부와 야권이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반도체 지원 문제와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각종 개혁이 알맞은 시기와 처방을 찾지 못해 갈팡대고 있다. 이 와중에 경제정보의 우위에 있는 C 경제수장은 거액의 미국 국채 투자 시기 문제로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모두가 적기(適期)에 대한 개념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이슈화되고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용서 없는 경영실태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피부 상처에 생긴 고름을 방치하여 뼈까지 전이되면 치명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모쪼록 칼로 도려내고 짜내야 할 고름을 항생제로 버티는 어리석음을 자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가차없는 적기시정조치가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