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산업을 둘러싼 기후 리스크는 결국 국가 식량안보 및 산업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출처=오픈AI]
김치 산업을 둘러싼 기후 리스크는 결국 국가 식량안보 및 산업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출처=오픈AI]

이상기후로 인해 ‘국민 반찬’ 김치 산업의 고질적인 구조적 리스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 폭염과 폭우가 연이어 닥치면서 배추 작황이 나빠지고, 이에 따라 배추 가격은 전년 대비 47% 이상 급등했다. 김치 제조업계는 사태를 예견한 듯 일찌감치 배추 선비축에 나섰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단기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25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포장김치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대상(종가)을 비롯해 CJ제일제당, 풀무원, 롯데호텔, 조선호텔 등 주요 김치 제조·유통사들은 최근 배추 비축 물량을 늘리고 있다. 통상 1~2개월 분량이던 비축 규모를 3개월 이상으로 확대하거나 계약재배 수매 시기를 앞당기는 식이다.

하지만 김치의 원재료에서 배추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하고, 그 외 재료(마늘·고춧가루 등) 역시 기후 영향을 크게 받는 농산물이란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대응책은 그야말로 ‘땜질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김치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채소를 주재료로 대량 가공하는 발효식품이지만 그만큼 농산물 공급망 불안에 노출돼 있다”며 “한 해 기후 패턴에 따라 수급이 뒤흔들리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시대, 김치 산업의 최대 리스크는 배추에 대한 ‘절대 의존도’다. 최근 5년간 배추 수확량은 상당한 등락폭을 보이며 불안정성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여름철 기온 상승과 국지성 집중호우는 병충해 발생을 급증시켜 수확 시점의 품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수급이 불안정함에도 김치 산업은 여전히 '단일 품종 집중형'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산업 차원의 대안 마련보다는 정부의 비축 방출 정책에 의존하거나 단기 계약재배에 의존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김치 산업은 원재료 수급이 불안정한 반면, 소비자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기술력이나 스마트농업 적용률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 사실상 ‘기후복불복’ 전략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치 원재료 중 가장 비중이 높은 배추는 대표적인 기후 민감 작물임에도 농업 기술의 적용률은 극히 낮은 수준이다. 스마트팜 기술 도입률은 일부 시험단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저장성 높은 품종 개발이나 병해충 대응 품종 개량 등은 대부분 정부 연구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민간 식품기업이 자체적으로 농가와의 협업 또는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는 김치 산업이 가공 중심의 납품 구조로 형성돼 있고, 1차 산업인 농가와의 연결 고리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품업계는 농가와 계약재배를 맺더라도 농업 리스크를 분담하기보다는 일정 물량 확보 차원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농가도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 수익 중심으로 재배 품종이나 규모를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업계에서는 김치 산업의 생존 전략으로 글로벌 공급망 확대와 해외 생산기지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 수출용 김치 생산을 넘어서, 해외 현지의 기후 리스크를 분산하고 다품종 원료 수급체계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로 국내 채소 재배 환경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면서 ‘글로벌 분산형 재배 체계’는 필수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원료 조달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국내 생산에만 의존한다면 김치 산업의 수출 확대도 결국 불안정성을 안고 갈 수밖에 없으며 현지 기후·토양에 맞는 작물 품종을 개발하고, 물류·저장 설비를 고도화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응해 배추 3만5500t을 비축하고, 순차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미온적이다.

공급 물량 확대는 일시적인 가격 완화 효과는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수급 구조 전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단기 정책보다는 민간 기업 주도의 장기 투자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며 “식품사와 농가, 유통기업이 연계된 ‘농산물 기반 산업 생태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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