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출처=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가 테슬라로부터 약 23조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 생산 계약을 따내며 파운드리 시장에서 본격 반격에 나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직접 삼성 텍사스 공장에서 AI6 칩을 생산한다고 공개하면서, 삼성의 초미세 공정 수율이 일정 수준 이상 도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TSMC가 장악하고 있던 선단공정 시장에 균열이 생겼다는 평가다.

28일 삼성전자는 "글로벌 대형 기업과 22조7647억6416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7.6%에 달하는 수준으로, 단일 고객사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업계에선 해당 고객이 테슬라임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앞서 머스크는 X(구 트위터)를 통해 "삼성의 텍사스 신규 파운드리 공장은 테슬라의 AI6 칩 생산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며 "해당 공장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삼성이 테슬라의 제조 효율 극대화를 지원하게 됐다"며 "직접 현장을 방문해 생산 속도를 높이겠다"고도 했다. 텍사스는 테슬라 본사가 위치한 지역으로, 물리적 접근성과 전략적 협업 측면에서 삼성 공장의 입지가 최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수주에서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가 테슬라의 AI6 칩을 맡았다는 것이다. AI6는 자율주행을 넘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 AI 슈퍼컴퓨터 '도조(Dojo)' 등에 들어갈 통합형 칩으로, 연산 능력과 집적도가 한층 강화된 차세대 반도체다. 머스크에 따르면 AI5 칩은 TSMC가 맡고 있지만, AI6는 삼성의 몫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계약은 삼성 파운드리가 2나노 공정 전환에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의하면 올해 1분기 삼성 파운드리의 점유율은 7.7%로, 3위인 중국 SMIC(6.0%)와 격차가 1.7%포인트까지 좁혀졌지만 TSMC(67.6%)와는 아직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간 삼성은 TSMC보다는 3위 방어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이번 계약으로 보다 공격적인 전략에 나설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이번 계약을 계기로 미주 고객 대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한진만 사장을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에 임명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그는 이전까지 DS부문 미주총괄을 맡아 미국 주요 고객들과의 접점을 넓혀온 인물이다. 수율 개선을 위한 CTO 직책도 신설해 남석우 사장을 선임, 기술 안정화와 대외 수주 역할을 분리해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AI 칩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테슬라 외에도 애플·아마존·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위탁생산처 다변화를 검토 중이다.

이들이 삼성으로 발주를 확장할 경우 후속 대형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머스크가 언급한 'Dojo 2' 프로젝트가 본격화될 경우 삼성의 추가 수주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편 삼성전기 등 그룹 계열사와의 협업 확대 가능성도 예상된다. 삼성전기는 현재 테슬라 차량용 카메라 모듈을 공급 중이며, 로보택시 상용화에 따라 멀티카메라 기술이 더 주목받는 분위기다. 일부에선 디스플레이, 배터리 부문까지 테슬라와의 협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액 자체보다 AI6 칩이라는 첨단 제품의 수주라는 점에서 삼성전자로선 의미가 크다"며 "파운드리 사업은 공정 고도화와 고객 신뢰 확보가 중요한 만큼, 이번 계약은 수율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류 연구원은 이어 "이번 수주 외에도 삼성전자는 IBM, 닌텐도, 독일 업체 등과도 협업하고 있으며 자체 엑시노스도 생산 중"이라면서도 "AI6 수주를 계기로 파운드리 가동률은 상승하겠지만 본격적인 수익성 확보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번 계약은 그간 멈춰 있던 삼성의 텍사스 테일러 공장 투자를 재개하게 만든 전환점"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파운드리 수주 건은 테일러 팹 투자 재개에 기대감을 심어 줄 수 있다"며 "고객이 확보된 만큼 하반기 구체적인 운영 계획이 수립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올해 연말 인프라가 준공이 마무리되면서 원패스 물량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장비 입고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세 공정 경쟁에서 TSMC와의 격차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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