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공사와 신세계·신라면세점 간 임대료 조정 협상이 결렬되며 면세점 업계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출처=오픈AI]](https://cdn.ebn.co.kr/news/photo/202509/1677234_693993_3555.jpg)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신세계·신라면세점 간 임대료 조정 협상이 결렬되며 면세점 업계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공사가 임대료 인하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면서 최종 조정의 실효성마저 희박해졌다.
두 대형 면세점이 철수 카드를 꺼낼 경우 중국 국영 면세기업 CDFG이 인천공항에 재진출할 것이란 시나리오와, 세계 1위 공항 면세 시장의 주도권이 외국 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함께 확산되고 있다.
업계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계약 분쟁을 넘어 국가 브랜드와 직결된 면세 산업의 미래, 공기업의 운영 철학, 그리고 외자 유입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까지 흔드는 ‘복합 위기’로 번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28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임대료 조정 협상 2차 민사 조정기일에서 인천공항공사는 끝내 불참했고, 법원은 양측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기 어렵다고 보고 강제조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법률상 강제조정은 공사 측의 이의 제기로 효력을 상실할 수 있으며, 인천공항공사는 “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법원이 조정안을 제시하더라도 조정안이 확정되기 전 2주의 이의신청 기간 내 반대하면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공사 측은 임대료 인하 자체가 배임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면세점 두 곳이 자율적 경쟁입찰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낙찰된 계약을 체결한 뒤, 경영난을 이유로 임대료 감면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신라와 신세계는 입찰 당시 최소수용금액보다 각각 68%, 61% 높은 금액을 써내며 승리했다. 공사는 법률 자문을 통해 조정안을 수용할 경우 국가계약법, 공공기관운영법 위반은 물론,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같은 공사의 완강한 태도에 따라 최종 협상에서도 합의 도출 가능성은 낮다. 이에 따라 양 면세점은 소송 지속과 철수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심 중이다. 하지만 매월 60억~80억원 수준의 적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수년간 소송을 이어가는 것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철수 시 약 1900억원의 위약금이 부과되지만, 장기적인 누적 손실을 고려하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철수를 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킬 경우, 두 면세점은 내년에 올해보다 약 600억원씩 증가한 3700억~3800억원의 임대료를 부담하게 된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확장과 아시아나항공 이전에 따라 여객 수 증가가 예상되면서, 기존 매장에 적용되던 영업요율이 아닌 여객 연동 방식으로 임대료가 재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매출 구조로는 수익성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삼일회계법인 자문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30% 이상 임대료 인하가 이뤄져야 손익분기점 도달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문제는 철수 시 대체 사업자의 입점 여부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는 롯데면세점과 중국 국영 면세기업 CDFG다. 롯데는 2018년 과도한 임대료를 이유로 인천공항에서 철수한 바 있으며, 당시 납부한 위약금 1870억원의 반환 소송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 CDFG는 이미 지난 입찰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기업과의 합작법인 형태로 다시 입찰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중국 면세기업의 입점은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공항의 국가 이미지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공항 면세점은 외국인이 입국 직후 마주하는 국가의 상징적 공간으로 여겨지는 만큼, 중국 국영기업의 진출은 사실상 ‘안방을 내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사의 일방적 행정과 고압적 입찰 구조가 자초한 사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시아 주요 공항들이 코로나19 이후 면세사업자와의 상생을 위해 임대료를 감면한 것과 달리, 인천공항은 임대료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거나 유연하게 대응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상하이 푸둥공항 등은 최소 25~30% 이상의 임대료 감면 정책을 시행한 반면, 인천공항은 1%의 인하 가능성조차 일축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계약 분쟁을 넘어, 국내 면세 산업의 미래와 공항 공기업의 운영 방향성, 외자 유입의 사회적 수용성 등 복합적인 이슈가 얽힌 사건이다. 결국 신세계·신라면세점의 최종 선택과 인천공항공사의 태도 변화 여부가 향후 면세 산업 전반의 판도를 결정지을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문가는 “면세점은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와 직결된 공공 자산의 성격을 갖는다”며 “지금처럼 계약 논리에만 매몰될 경우, 단기 수익은 지킬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외국 자본에 시장 주도권을 내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사와 사업자 모두 상생의 관점에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며, 정부 차원의 중재 역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