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롯데케미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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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중국의 공격적 설비 확장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원가 절감'과 '고부가 전환'이라는 이중 과제 해결이 생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구조적 원가 열세와 중국발 공급과잉, ESG 규제까지 맞물린 상황 속 단기적 원가 리스크 관리와 중·장기적 공정 전환을 병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9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진단과 정책지원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3년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평균 15.07% 급증했다. 반면 한국은 6.25%에 그치며 글로벌 점유율이 5.7%까지 떨어졌다. 

세계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1억 6974만톤에서 2023년 2억 1532만톤으로 연평균 4.93% 증가했다. 중국은 같은 기간 2565만톤에서 5174만톤으로 늘어 연평균 15.07%라는 압도적 성장률을 기록했다. 미국은 3393만톤에서 4583만톤으로 6.21% 늘었으며 한국은 1000만톤에서 1280만톤으로 6.25% 성장했다. 한국의 비중은 2018년 6.0%에서 2023년 5.7%로 낮아졌다. 규모 자체에서 이미 격차가 크지만, 문제는 공정별 원가 구조다.

국내 석유화학 근간인 NCC설비는 국제 유가 변동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고비용 구조로 원료 가격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 ECC나 중동 COTC에 비해 불리하다. 특히 중국이 저렴한 러시아산 나프타를 확보, 국내 NCC의 원가 부담은 더욱 커졌다는 게 보고서 설명이다.

[출처=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출처=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과 중동이 활용하는 에탄 분해(ECC)는 에틸렌 톤당 원가가 400달러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주력인 나프타 분해(NCC)는 700~750달러로 두 배 가까이 높다. COTC(원유→화학)는 500달러대, CTO/MTO(석탄·메탄올→올레핀)는 600달러 전후로 계산된다. 특히 NCC는 국제유가 변동에 민감해 유가 10달러 상승 시 톤당 원가가 50달러 이상 뛰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구조적 열세는 영업이익률에 직결된다고 보고서는 봤다. 2023년 한국 주요 NCC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3%대에 머문 반면, 중동 ECC 업체는 10% 안팎을 유지했다. 

성동원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원가 격차만으로도 글로벌 경쟁에서 수익성이 갈린다"며 "중국·미국과의 경쟁에서 방어선이 급격히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은 설비 증설과 함께 대체 공정까지 대규모로 확대 중이다. 2023년 기준 중국의 CTO/MTO 설비능력은 2000만톤을 넘어섰고, COTC 단지는 10개 이상 가동되고 있다. 이는 원가 구조를 다변화해 시장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반면 한국은 나프타 기반 설비 의존도가 70% 이상으로 여전히 높아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보고서는 생존 전략과 관련 단기·중기·장기로 구분해 해법을 내놨다. 

먼저 단기로는 원료 조달 다변화와 가동 효율 개선이다. 에탄·메탄올 장기 공급계약을 맺고, 스마트팩토리를 통한 설비 최적화로 톤당 원가를 3050달러 절감하는 전략이며, 중기는 고부가 제품 전환이다. 전자·배터리·정밀화학 소재 등 단가가 23배 높은 특수 제품의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목표가 제시됐다.

장기는 공정 전환과 친환경 투자다. ECC·COTC 설비 도입으로 원가 구조를 혁신하고,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같은 저탄소 설비를 확충하는 구상이다.

업계는 정책적 뒷받침도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전환투자 세액공제 확대 △에탄·메탄올 전용터미널 건설 △고부가 촉매·재활용 기술 R&D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무역·외교적 차원에서 원료 공급국과 장기 계약을 추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실제로 ECC를 한국에 도입할 경우 연간 1조원 이상의 원가 절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결국 한국 석유화학의 향후 10년은 원가 열세를 뚫고 고부가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공급 과잉과 친환경 규제가 겹친 환경에서 단순 증설로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탄·메탄올 장기 공급계약을 통해 원료 가격 리스크를 줄이고, 공장 수율 개선으로 톤당 원가를 최소 30~50달러 절감하는 방안과 함께 중기적으로는 전자·배터리용 고부가 소재로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ECC·COTC 등 원가 우위 공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매년 수백만톤의 설비를 늘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차별화된 제품·공정으로만 버틸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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