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수원 선경직물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 시찰하는 고 최종건 SK 창업회장. [출처=SK]
1969년 수원 선경직물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 시찰하는 고 최종건 SK 창업회장. [출처=SK]

창립 72주년을 맞은 SK그룹이 글로벌 불확실성과 경기 둔화 위기 속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고유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에 집중, '삼각파도' 극복에 나선다.

SKMS를 통해 직물에서 에너지 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한 혁신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구상이다. 

SKMS는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이 1979년 정립한 경영관리체계다. 그는 당시 SK의 경영 철학·목표·방법론을 통일된 체계로 정리해 그룹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SKMS는 이후 SK그룹 전 계열사의 의사결정과 전략 수립에 밑바탕이 되고 있다.

8일 재계에 따르면 SK는 전날 서울 종로구 선혜원에서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과 고 최종현 선대회장을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와 주요 경영진이 참석해 창업 정신을 되새겼다.

■1953년 직물에서 출발…정유·ICT·반도체로 확장

1953년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로 시작한 SK그룹은 1980년대 섬유에서 정유로 수직 계열화를 이루며 성장 기반을 다졌다.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 2010년대에는 반도체로 외연을 넓히며 현재는 자산 기준 국내 재계 2위로 도약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국내 최초 직물 수출, 아세테이트·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 1973년 워커힐호텔 인수 등으로 그룹의 기틀을 닦았다. 1973년 별세 후 경영권을 승계한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를 인수하며 그룹의 변곡점을 열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교분을 활용해 석유파동 중에도 안정적인 원유 수급을 달성했고, 중동 오일머니를 외자로 유치하며 정유·화학 기반의 성장 전략을 본격화했다. ‘유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바이오·소재 등으로도 확장을 시도했다.

최 선대회장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정보통신을 낙점했다. 1984년 미국 내 경영기획실 산하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만들고, 1991년 대한텔레콤을 설립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지만, ‘특혜’ 논란을 의식해 자진 반납했다. 이후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공개입찰에 참여, 4,370억원을 들여 지분 23%를 확보하며 통신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1998년 그룹명을 ‘SK’로 바꾸고 글로벌 일류기업 도약을 선언했지만, 그해 별세하며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 경영을 이어받았다.

[출처=SK그룹]
[출처=SK그룹]

■'IMF·글로벌 금융위기·반도체 위기' 넘긴 최태원

최 회장은 에너지와 정보통신 중심의 사업 구조를 바탕으로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파했다. 2011년에는 3조3,747억원에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인수하며 SK의 4번째 산업 전환을 이끌었다.

반도체 불황으로 ‘승자의 저주’ 우려도 있었지만, 그는 메모리 산업의 미래를 확신하고 2012년 SK하이닉스를 출범시켰다. 이후 R&D 투자만 연간 수조원대에 달하며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했다. HBM은 최근 AI 시대의 핵심 부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3년 말 최 회장의 사촌동생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선임됐고, 친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SK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에너지 사업을 총괄하며 '형제경영'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 회장은 앞서 2018년 자신의 SK㈜ 지분 중 4.68%를 친족에게 증여하며 오너일가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기도 했다.

최근 최 회장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미국발 관세전쟁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AI 패러다임 전환 등 ‘삼각파도’를 지목했다. SK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유·반도체 등 수출 비중이 높은 사업은 물론, 배터리·바이오 등 미래사업에 있어서도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리밸런싱' 지속…AI·데이터센터 집중 투자

SK그룹은 지난해부터 전사적 리밸런싱 작업을 추진 중이다. 지주사 SK㈜는 2023년 한 해 동안 106개 연결 자회사를 정리했다. 흡수합병(SK E&S), 청산(SK네트웍스아메리카·팬아시아반도체소재), 매각(SK렌터카) 등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올해도 비핵심 자산 정리를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동시에 데이터센터, 거대언어모델(LLM) 등 차세대 AI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본격화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과 연이어 만나며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을 강화 중이다.

한편 SK는 최근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의 사저였던 ‘선혜원’을 ‘SKMS연구소’ 분원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고인의 생가였던 경기 수원 소재 자택을 ‘SK고택(古宅)’으로 개방했고, 최근에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담은 ‘선경실록’을 디지털로 복원해 보존에 나섰다.

SK 관계자는 "SKMS의 원칙과 철학은 경영위기 때마다 그룹을 지탱한 축"이라며 "지금의 글로벌 위기를 넘어 다시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