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4대 시중은행 사옥.[출처=각 사]
사진은 4대 시중은행 사옥.[출처=각 사]

이재명 정부의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배드뱅크) 윤곽이 나오면서 은행권은 4000억원 규모의 '상생 청구서'를 받게 될 전망이다.

은행권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번 채무조정 출연을 시작으로 새 정부의 상생 압박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금융위원회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무담보채권을 탕감해주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등으로 마련한 정부 재정과 금융권 자금 등을 투입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기구(배드뱅크)를 설치한다.

이른바 '배드뱅크'가 금융사로부터 장기 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한 뒤 빚을 탕감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예상되는 총 매입채권 규모는 16조4000억원이며, 113만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 연체 채무조정 프로그램 총 소요 재원은 약 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16조4000억원을 평균 5% 가격으로 매입할 경우 필요한 금액이다.

이 중 4000억원은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나머지 4000억원에 대해서는 금융권에 분담을 요청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추경에 반영되지 않은) 4000억원은 금융권 도움을 받아 마련해야 한다"며 "금융사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출연 이유에 대해선 "과거에도 많은 은행이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대규모 빚 탕감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은행권에선 '올 것이 왔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시절 '대출 탕감' 공약을 내걸었을 때부터 금융사, 특히 은행이 재원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은행은 자산규모가 커 출연금을 부담할 여력이 있는데다 지난해에도 최대 실적을 낸 만큼 더 강한 사회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현재도 20개 은행은 정부 주도로 역대 최대 수준인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2024 은행 사회공헌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연합회와 회원기관(은행·보증기금·한국주택금융공사)의 지난해 사회공헌 사업 지출 총액은 1조8934억원으로 보고서 발간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외에 지난 2023년 10월 발표한 2조1000억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방안과 2023년부터 3년간 총 5800억원을 출연해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은행권 사회적 책임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추가적인 부담을 지게 된 은행권의 표정은 밝지 않다. 막대한 규모의 재원을 출연금으로 쓰게 되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전략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본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4000억원 규모의 채무조정 출연을 시작으로 반복적인 상생 청구서가 날아올까 두려워하고 있다. 

오는 9월에 이 대통령이 탕감을 주장했던 50조원 규모 코로나19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가운데, 향후 집행 과정에서 손실이 커질 경우 상당 부분이 은행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 재정으로 할 일을 민간 기업인 은행에게 떠넘기는 일이 지속되고 있는데 문제는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은행을 향한 사회적 환원 요구에 대해선 공감하나 정책 시행 시 필요할 때마다 반복적인 출자 요구를  받는 관행이 굳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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