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 생활산업부 기자
이윤형 생활산업부 기자

홈플러스가 내놓은 인수 시나리오는 회생을 위한 정상 매각 로드맵이라기엔 지나치게 친절하다. 이쯤 되면 '기업 털이, 이렇게 하세요'라고 써붙인 안내서처럼 읽힌다.

이미 한계를 드러낸 차입매수(Leveraged Buyout·LBO) 구조를 또다시 들이밀며 이번엔 경영 정상화라는 무거운 짐까지 새 주체에게 고스란히 넘기겠다는 태도다.

지난 8일 홈플러스는 '홈플러스 인수, 실제 투입 자금은 1조원 이하도 가능할 전망'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기존 지분 인수 부담 없이 신규 자금 투입을 통해 곧바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다"며 바겐세일에 나섰다.

MBK가 포기한 보통주 2.5조원은 '없던 돈'이 됐고 보유 부동산 4.8조억원 중 일부만 담보로 잡아도 2조원을 빌릴 수 있으니 실투입은 1조원도 필요 없다는 계산이다. 

겉보기에 기막힌 딜이다. 문제는 그게 정상적인 기업 인수가 아닐뿐더러 단순 계산에도 오류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서울회생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약 3.7조원이다. 회생 M&A에서는 이 청산가치 이상으로만 인수하면 된다는 논리를 들이밀지만 청산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보수적으로 설정된 자산 매각 기준일 뿐, 향후 기업 운영과 수익성 전망을 반영한 수치가 아니다. 

게다가 홈플러스의 매출 감소세, 오프라인 유통 구조의 한계, 브랜드 경쟁력 약화를 감안하면 3.7조원이라는 수치 자체가 과도하게 낙관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홈플러스가 제안한 인수 자금 확보 방안에도 오류가 있다. 홈플러스가 보유한 부동산의 장부가는 4.8조원에 달한다. 이를 담보로 일반적인 담보인정비율(LTV)을 적용하면 약 2조원가량의 차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홈플러스는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이다. 금융기관이 회생기업에 대해 적용하는 담보가치는 일반적인 수준과 같을 수 없다. 심지어 유통 점포의 상당수가 장기 임대 계약 중이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담보가치를 높게 잡는 건 현실과 괴리된 전제다.

MBK가 2.5조원에 달하는 보통주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거액 쾌척이 아니라 투자실패를 인정한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도 함정이다. 포기한 지분은 시장에서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홈플러스의 사업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내부 평가가 '제로'에 가까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수 부담이 줄었다는 말은 곧 그만큼 기업의 내재 가치를 MBK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매뉴얼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대목은 직원에 대한 고려가 단 한 줄도 없다는 점이다. 점포 수백 곳과 직원 수천 명의 생계가 걸린 기업임에도 인수 구조 설명에는 고용 안정도, 경영 계획도 찾아볼 수 없다.

직원들의 삶이 달린 점포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라고 권유까지 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이 인수 구조가 무엇을 우선하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이 구조는 애초에 지속가능한 경영이나 고용 안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자산을 헐값에 확보하고 유동화 가능한 부분만 쏙 빼먹은 뒤 빠져나오는 '숏 게임' 논리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홈플러스는 지금 그 악순환을 매뉴얼로 만들어 새 인수자에게 건네고 있다. 

기업 회생은 부실을 정리하고 지속 가능성을 되살리는 절차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구조 설계는 회생이 아니라 투자 실패 면피용 출구 전략에 가깝다. MBK는 경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깡통으로 취급한 2.5조원'을 쾌척하겠다며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이다.

MBK파트너스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썼던 수법은 차입을 극대화한 LBO였다. 당시에도 '재무적 투자자의 먹튀'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홈플러스는 그 구조를 그대로 복제해서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부동산 담보 잡고, 채권자와 조건 조율하고, 투입 자금은 최소화하는 식이다.

결국 홈플러스는 "우리 방식이 통했으니, 이대로 하면 된다"는 먹튀 매뉴얼을 공개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껍데기만 넘기고 내용물에는 손 떼겠다는 무책임의 극치다. 철저히 자산만 계산하고, 사람은 숫자 밖으로 밀어낸 회계주의의 민낯이 여기에 있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자산을 담보로 거래되는 회계 단위인가 아니면 사람과 브랜드, 미래를 담보로 사회에 책임지는 주체인가. 홈플러스는 지금 그 질문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저 팔 물건일 뿐이다" 이 메시지를 듣고도 정부와 법원이 침묵한다면, 그건 홈플러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