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브리핑실에서 2025 세제 개편안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https://cdn.ebn.co.kr/news/photo/202508/1674846_691213_94.jpg)
설익은 2025년 세제개편안이 경제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로 단 하루 만에 116조원이 증발했고 배당과 법인세 인상은 기업 투자와 주주환원 기대를 꺾었다. 정책의 명분과 시장 현실이 충돌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핵심 경제 목표인 ‘코스피 5000’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7월 말 발표한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낮춘 것이다.
발표 직후인 이달 1일 국내 증시는 단 하루 만에 시가총액 116조원이 증발했다. 코스피가 99조2000억원, 코스닥이 16조8000억원 줄어들며 투자심리가 급랭했다.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의 연구를 적용하면 이번 증시 급락으로 가계 소비여력은 약 8조1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투입한 소비쿠폰 1차 예산과 같은 규모다. 경기 부양을 위한 한쪽 손의 지출을 다른 손의 세제로 거둬들인 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개편안은 양도세 강화 외에도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법인세율 인상, 증권거래세율 상향을 포괄한다. 법인세는 전 구간에서 1%포인트씩 올라 최고세율은 25%가 됐고, 증권거래세율은 코스피 0%에서 0.05%, 코스닥은 0.15%에서 0.20%로 인상됐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기업의 배당 확대를 유도한다는 취지였지만 요건이 까다롭고 세율도 높아 실효성 논란이 크다. 전년도 대비 현금배당이 줄지 않은 기업 가운데 배당성향 40% 이상, 또는 배당성향 25% 이상이면서 최근 3년 평균 대비 배당금이 5% 이상 증가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여기에 배당소득 2000만원 이하 14%, 2000만원 초과 3억원 이하 20%, 3억원 초과분은 35%라는 고세율 구조가 덧붙여졌다.
연말 수급 불안과 상법 개정 충돌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으로 주주환원 강화 기대감이 커진 상황에서 이번 세제안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웠다”며 “정책 효과보다는 투자심리 위축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연말 수급이다. 한국 증시는 매년 12월 개인투자자들의 과세 회피 목적 매도가 반복되는 구조적 패턴을 보여왔다. 과거에는 기관과 외국인의 배당 수요와 결산 매수가 이를 흡수했지만, 최근 배당 기준일을 3월로 바꾸는 기업이 늘면서 연말 매수세는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대주주 기준까지 10억원으로 낮아지면 개인 매도 압력은 더욱 커지고 전통적인 ‘12월 랠리’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용구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주주 요건 하향조정은 명목상 공정과세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말 매도 후 연초 재매수로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소비쿠폰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단 하루 만에 날려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 취지와 충돌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국회는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위해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가 세금 회피를 위해 연말에 지분을 매도하면 주주총회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지배주주의 의결권만 더 강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정책 방향성에 혼선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이달 말 국무회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확정되며,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된다. 최종 통과 여부는 12월 본회의 표결에서 가려진다. 시장 충격과 여론 반발이 이어질 경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NH투자증권은 “세제개편안이 원안대로 입법될 경우 연말까지 가치주·배당주의 투자 매력도가 약화될 것”이라며 “개인 매도세 확대와 기관·외국인의 연말 매수 수요 감소가 맞물려 전통적 강세 흐름에도 제약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유안타증권 역시 “대주주 요건 하향조정의 묵시적 충격은 소비쿠폰 발행의 명시적 이익을 상쇄한다”며 정책 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코스피 5000포인트 달성’을 경제정책의 핵심 목표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단 한 건 세제정책이 증시에 직격탄을 날리며 그 목표 달성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공정과세라는 정치적 명분과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경제적 기조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가 정책 신뢰도와 정권 후반기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