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대한상공회의소]](https://cdn.ebn.co.kr/news/photo/202508/1675024_691416_5346.jpg)
지난달 22일 개정 상법이 시행돼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에게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합리적 경영판단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 기업 의사결정에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9일 발표한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충실의무 확대는 이뤄졌지만 배임죄 성립 여부와 경영판단 원칙 적용 기준이 모호하다"며 "면책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23년 10년간 배임·횡령죄의 무죄율은 평균 6.7%로, 전체 형사범죄 평균(3.2%)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이는 배임죄가 실제 침해가 아닌 ‘위험’ 단계에서도 적용되고, 명확한 고의 없이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등 구성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우리나라 배임죄 제도는 형법, 상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으로 3원화돼 있다. 하지만 특경법 적용을 위해 형법상 업무상배임죄가 우선 적용되면서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보고서는 추가 문제점으로 △35년째 고착된 특경법 가중처벌 기준 △쉬운 고소·고발 △민사분쟁의 형사화 등을 지적했다. 특히 특경법의 가중처벌 기준은 1990년 이후 ‘5억·50억 원’이 유지되고 있는데, 물가상승을 반영하면 현재 화폐가치로는 약 15억·150억 원에 해당한다.
고소·고발이 쉽게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투자 실패임에도 경영자가 배임죄로 고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 기업의 모험적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상법 개정으로 주주 보호 의무가 신설되면서 향후 고발 사례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 사적 분쟁이 형사 절차로 변질되는 점도 비판받는다. 배임죄 고소가 증거 확보나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어, 민법의 ‘사적 자치 원칙’과 형법의 ‘보충성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해외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처벌 강도는 두드러진다. 미국·영국은 배임죄가 아예 없고 사기죄나 민사 손해배상으로 대응한다. 독일·일본은 배임죄가 있으나 가중처벌은 두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특경법으로 5억 원 이상 이득 시 ‘3년 이상 징역’, 50억 원 이상이면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이에 보고서는 △특경법상 가중처벌 규정과 형법 업무상배임죄, 상법 특별배임죄 폐지 △불가피하다면 기준금액 현실화 △경영판단 원칙의 법제화 등을 제안했다.
경영판단 원칙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와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손해가 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미국·영국·일본은 판례로, 독일은 2005년부터 법에 명문화해 적용 중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 대법원 판례에서 처음 인정했으나 민사·형사 모두 적용하고 있어 논란이 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최근 이사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진 만큼 경영판단 의사결정을 보호하는 제도가 균형있게 마련돼야 한다"며 "최근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 TF’를 발족하여 1년 내 전 부처의 경제형벌 규정 30%를 정비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는데 국회에서도 기업의 투자결정과 혁신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배임죄 제도개선 논의가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