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화장품 수출의 중심축이 20여 년 만에 대전환을 맞았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한국 화장품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업계는 이에 대해 단순한 순위 역전이 아닌 수출 구조의 지형 자체가 바뀐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전통적 주력 시장이던 중국의 성장 둔화 및 규제 강화, 코로나19 이후 소비 패턴 변화 등 대내외적 변수들이 맞물린 가운데 미국은 디지털 유통에 강한 인디 브랜드들의 약진과 제도적 투명성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주력 시장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6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25년 3분기 누적 보건산업 수출 실적’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국내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4% 증가한 8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미국 수출은 16억7000만 달러로 18.1% 늘며 전체 수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15억7700만 달러를 기록하며 11.5% 줄어 2위로 밀려났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1.0%포인트 앞서 있던 중국이 3분기 들어 1.1%포인트 차이로 미국에 역전 당한 것이다. 국내 화장품 수출 역사상 중국이 2위로 내려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구조적 전환의 중심에는 기초화장품 수출 증가와 디지털 채널을 통한 인디 브랜드의 약진이 있다. 전체 화장품 수출의 74.5%를 차지한 기초화장용 제품류 수출은 63억3200만 달러로 14.8% 늘었으며, 이 중 미국은 14.7% 증가한 12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은 12억 달러로 11.5% 감소했다. 색조화장품 역시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21.7%, 26.7% 증가한 반면 중국은 24.1% 줄어든 1억8000만 달러에 그쳤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 대기업보다 민첩한 대응력을 보인 신흥 브랜드들이 주도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시가총액 10조원 규모의 에이피알이 전개하는 '메디큐브'와 구다이글로벌이 인수한 '조선미녀'는 아마존 등이 꼽히며 이들 브랜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달 아마존 ‘프라임 빅딜’ 행사에서는 메디큐브 제로 모공패드가 뷰티 카테고리 판매 1위를 기록했으며 메디큐브는 미국 내 판매량이 2022년 대비 약 7배 증가했다. ‘조선미녀’는 ‘조선’이라는 브랜드 네이밍을 미국 MZ세대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며 미국 내 대표 K뷰티 브랜드로 부상했다.
실제 이 같은 인기는 최근 아시안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확인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 방한단에 포함된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과 마고 마틴 보좌관은 경주 올리브영 매장을 방문해 국내 화장품을 구매하고 SNS에 인증사진을 게시했다.
이로 인해 해당 매장은 전주 대비 방문객 수가 77% 급증했고, 외국인 매출 비중도 63%까지 상승했다. 메디큐브, 토리든, 조선미녀 등 이들이 선택한 브랜드들은 모두 디지털 기반의 중소 인디 브랜드였다.
업계는 K-뷰티의 미국 시장 공략이 단기 이벤트가 아닌 명확한 수출 전략 변화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사드 사태 이후 이어진 중국발 규제, 코로나19, 한한령 등으로 인한 장기적인 수출 감소에 따라 그간 국내 기업들이 꾸준히 미국·일본·동남아 등 대체 시장 개척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시장은 규제가 비교적 명확하고 디지털 유통 채널이 발달해 있어 K-뷰티의 테스트베드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의약품 관세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유지하기로 합의하면서 기능성 화장품 수출 불확실성이 제거된 점도 호재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규제 강화로 인해 점점 폐쇄적인 시장이 된 반면 미국은 디지털 경쟁력과 소비자 다변화를 기반으로 K-뷰티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며 “국내 화장품 수출 전략은 이제 특정국 집중에서 글로벌 분산 체제로 본격 전환된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