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고받기식 공개매수가 치열했습니다. 고려아연과 영풍·MBK 연합의 경영권 분쟁 얘깁니다. 고려아연 측이 결국 '폭탄 유증'까지 던져 시장의 파문이 커졌습니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어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 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키로 했습니다. 발행주식의 20%에 육박하는 규모죠.
고려아연은 불과 얼마 전 자사주 공개매수를 89만원에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것도 차입금을 빌려 진행했던 것입니다.
차입을 통해 89만원에 자사주를 매입하고, 곧바로 다시 유상증자를 통해 67만원에 주식을 발행하는 행위는 주주가치 제고와 정반대에 서 있는 오로지 경영권 유지만을 위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영권 유지를 하겠다는 현 경영진의 의지는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법의 경계를 넘어서고 일반 주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는 자본시장을 피폐하게 하는 한편 최근 강조되는 기업 밸류업에 대한 역행이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제공=연합뉴스]](https://cdn.ebn.co.kr/news/photo/202410/1641713_652790_1732.jpg)
고려아연의 계획대로 유증이 마무리되면 MBK·영풍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43.9%에서 36.4%로 희석됩니다. 최윤범 회장과 그의 백기사인 베인캐피탈 측 의결권 지분율도 기존 40.4%에서 33.5%까지 줄지만, 이번 공모 과정에서 우선 배정한 우리사주물량 3.4%가 최 회장 편에 서면 의결권 지분율이 36.9%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즉, 고려아연이 자금 조달의 목적을 여러가지 기재하여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실상은 경영권 유지를 위한 우호지분 확보에만 골몰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의 '유연한' 유상증자를 활용하여 지난해 최 회장 측의 우호주주가 된 현대차 그룹이 눈길을 끕니다.
현대차가 49.5%의 지분을 보유 최대주주로 있는 HMG Global LLC.(이하 'HMG'라 합니다)는 2023년 8월 고려아연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5272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HMG는 정의선 회장이 직접 출자하고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사가 총 9000억 여원을 출자한 기업입니다. 그 중 60% 가까이 고려아연 신주에 투자했습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말 그대로 회사의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인수할 기회를 주는 증자를 가리킵니다. 신속한 자금조달이나, 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라면 '예외'를 인정해주는 겁니다.
이러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현행법상 이사회 결의만으로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관 규정 등에만 위반되지 않으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주주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배정될 수도 있던 신주인수권을 원천 배제당했다는 측면에서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다시 고려아연의 2023년 8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사례로 돌아가서, 당시 HMG에게 발행된 신주는 고려아연 발행주식총수의 5%인 10만4540주였으며 신주발행가액은 50만4333원이었습니다. 지금 고려아연 주가를 고려하면 매우 행복한 신주인수금액입니다.
고려아연은 당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목적과 관련하여, "본 건 유상증자는 HMG 및 그 계열회사와의 전략적 사업제휴를 위하여 진행되는 것으로, 당사는 2023년 8월 30일 HMG 등과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와 관련하여 핵심 원재료 공급망 확보를 위한 공동사업 추진, 배터리 중간재 전구체 및 원소재(니켈, 코발트 등) 공급 등의 사업제휴를 위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현대차의 계열사라고 하더라도 해당 법인의 매출 규모는 매우 미미하였습니다. 2022 회계연도 기준으로 213억 원 매출, 619억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회사가 매출 규모의 약 24배에 달하는 금액을 고려아연의 신주에 투자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2023년 8월 당시 HMG는 고려아연 신주를 인수하면서 1년 보호예수를 걸었는데, 어느덧 보호예수기간마저 지나, 얼마든지 매도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주발행가액을 생각하면 원래 투자의 목적이라고 밝혔던 전략적 사업제휴의 시너지와 별개로 주가의 상승분 만으로 큰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행운의 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려아연 정관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관련 규정에 있어 다른 상장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유연한 규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려아연 정관(신주인수권 부분)>
제10조 ① 생략 ② 이사회는 제1항 본문의 규정에 불구하고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이사회의 결의로 주주외의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 1. 상법 및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신주를 모집하거나 인수인에게 인수하게 하는 경우 2. 상법 및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일반공모증자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3. 상법 및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주식예탁증서(DR)발행에 따라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4. 회사가 경영상 필요로 외국의 합작법인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상장사 표준 정관은 상법에 규정된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때 "발행주식총수의 20% 이내"라고 기재하여 발행한도를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권고합니다. 동시에 금융감독원의 감독사항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주주이외의 자에게 신주 발행을 하여 지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화되고, 주주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법 및 상법 시행령,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에서 신주인수권의 발행한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한 내용은 없으나, 법원이 판례를 통해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정관이 정한 사유가 없는데도,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상법 제418조 제2항을 위반하여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여 기존 주주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상법 제418조 제1항, 제2항의 규정(상법상 상장사에 대한 신주인수권 관련 규정)은 주식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면서 주주 아닌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경우 기존 주주에게 보유 주식의 가치 하락이나 회사에 대한 지배권 상실 등 불이익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신주를 발행할 경우 원칙적으로 기존 주주에게 이를 배정하고 제3자에 대한 신주배정은 정관이 정한 바에 따라서만 가능하도록 하면서, 그 사유도 신기술의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기업 경영의 필요상 부득이한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함으로써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자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따라서 주식회사가 신주를 발행함에 있어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정관이 정한 사유가 없는데도,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상법 제418조 제2항을 위반하여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대법원 2009. 1.30. 선고 2008다50776 판결 등 참조)"
또한 법원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시 정관상 발행한도를 초과하거나, 정관상 발행한도가 없는 경우 발행주식총수를 기준으로 초과발행비율이 너무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해당 신주발행을 무효로 판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려아연은 이러한 표준 정관과 감독 방향과는 다르게 경영상 목적을 이유로 제3자 배정 신주 발행을 진행하는 경우 외국합작법인에 배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발행한도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자금조달·재무구조 개선·신사업 투자 등 경영상 목적도 세분화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신주발행에 있어 기본적인 발행한도 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은, 매우 자유로운 정관 규정은 현 경영진 측에 우호주주가 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2023년 8월 진행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발행을 통해 고려아연의 주요 주주가 되었던 HMG는, 현재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현 경영진의 우호 주주로 활동하면서도 투자금액 대비 2배 가까운 수익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폭탄 유증 발표 전에는 무려 277%(2024. 10. 29. 기준)라는 단기 차익을 달성한 것으로 기록되기도 했지요.
![주고받기식 공개매수가 치열했습니다. 고려아연과 영풍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말합니다. 이 뒤에서 미소 짓고 있는 기업이 있네요. 바로 ‘현대차’입니다.[제공=연합뉴스]](https://cdn.ebn.co.kr/news/photo/202410/1641713_652791_1817.jpg)
경영권 분쟁 상황 속에서 발행주식 총수의 20%에 달하는 최대 물량에 대한 일반 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 신주인수권 규정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고려아연의 기술이 돋보이기는 하나, 기존 주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신주 발행' 부분에서는 강조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반 주주를 보호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한다'는 주장이 보다 힘을 얻으려면 신주 발행을 경영권 방어의 목적이 아니라, 사업의 발전을 위한 자금 확보에 방향을 두어야 합니다. 또한, 주주이외의 자로서 신주 인수 기회를 얻은 HMG 등과 같은 기업과 진정한 전략적 사업의 시너지를 통한 성과를 제시하여 일반주주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밸류업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한 밸류업이 이뤄질 때 '투기'가 아닌 '투자'로 수익을 실현하는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많이 나오고, 기업을 신뢰하는 투자자들이 더욱 많이 자본시장을 찾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으로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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