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 금융윤리인증센터 교수
윤성식 금융윤리인증센터 교수

'돈은 앉아 주고 서서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돈을 빌려줄 때는 갑의 입장이나 정작 받을 때는 을이 된다는 거다. 그만큼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가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번 개인채무자보호법으로 인해 이제는 무릎을 꿇고 받게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지난 10월 17일 시행되었다. △연체관리 △채권양도 △채권추심 △추심위탁 △채무조정의 5개 분야에서 개인채무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금융기관이 5천만원 미만 연체 대출에 대해 채무이행 기한이 도래하지 않은 부분의 연체이자 수취를 금지하여 채무자의 이자 부담을 경감시켰고, 채무자 거주 주택은 경매 신청 사유 발생 후 6개월이 지나 경매토록 하여 주거 안정권을 보장했다.

부실채권을 양도할 때는 양도 이후 장래 발생할 모든 이자는 면제 조치하여 연체이자의 무한 증식으로 인한 채무자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추심연락 횟수를 7일에 7회로 제한하는 추심총량제 도입, 채무자의 중대 재난∙입원∙혼인 등의 경우 최대 60일까지 추심 연락 금지, 채무자가 원하는 특정 시간대 또는 특정 수단을 통한 연락 금지 등 과도한 추심을 제한하여 연체 채무자의 안정적 생활권을 보장했다.

채무조정 측면에서는 법원의 개인회생 및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제도와 별도로, 3000만원 미만 연체에 대해 채무감면, 이자율 인하 등 금융기관의 자체 채무조정 장치를 마련하여 채무자가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보호법 시행으로 개인채무자의 획기적인 권익 보호와 사회 안전망이 강화되고, 금융기관의 개인채권 건전화에도 도움이 되어 서로 윈윈(win win)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채무자가 한층 강화된 보호법 뒤에 숨어 계획적으로 대출금을 갚지 않고 역으로 채권자를 괴롭히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염려되기도 한다.

개인채무자보호법에서는 모든 금융기관이 예외 없이, 불법을 막기 위한 기본적인 절차 및 기준을 마련∙시행토록 강제하고 있다. 즉 △채권양도내부기준 △채권추심내부기준 △추심위탁내부기준 △채무조정내부기준 △대부채권매입추심업자의 이용자보호기준 등 5개가 그것이다.

게다가 연체채권을 양도하거나 채권추심회사에 추심위탁할 때는 양수인 또는 채권추심회사의 전문성, 추심 관련 민원 처리 체계, 과거 추심 관련 법령 위반 여부 등을 평가토록 의무화하고 있어 이에 대한 평가기준도 만들어 시행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 하나가 생긴다. 임직원 1~2인의 조그만 대부자영업자의 경우 과연 이러한 내부기준들을 제대로 수립 시행하고 양수인 또는 채권추심회사의 전문성과 추심 관련 민원 처리 체계 등을 평가할 깜냥이 있을까 하는 그런 의문.

내부기준은 감독당국이 제시한 표준모범사례를 준용할 수 있다지만, 만약 1인 대부자영업자가 이러한 내부기준 및 평가기준을 제대로 수립∙시행하지 못해 해임 등의 행정처분을 받는 경우 뜻하지 않은 폐업 위기에 봉착하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기우도 앞선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조직에게는 법규상의 이행 능력을 감안하여 관련 법규 적용을 완화해 주곤 한다. 예컨대, 개인정보보호법에서 1만명 미만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소상공인에게는 개인정보의 안전 관리를 위한 내부관리계획 수립을 면제해 주며, 외부감사법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해 내부회계관리제도 설계 및 운영 기준 적용을 완화해 주는 경우 등이 그렇다.

따라서 인적∙물적 자원과 시스템이 열악한 영세 대부자영업자에 대해서는, 개인채무자보호법의 핵심 내용은 꼭 지키도록 지도 감독하되 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행정 부담은 덜어주는 등 법규 적용을 차등화하는 감독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금감원의 '대부업 실태 조사 결과'와 한국대부금융협회의 '소비자금융 컨퍼런스' 발표에 의하면 금융소비자의 대부분(93.2%)이 정식 등록대부업까지 불법사금융으로 인식하는 등 싸늘한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대부' 명칭을 '생활금융'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지지한다), 대부업체 수, 대부이용자, 대출잔액이 모두 감소 추세이고 연체율은 상승하는 등 영업 여건이 뒷걸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부업자들은 법정 최고금리가 대폭 인하(2002년 연 66% → 2024년 연 20%)되어 높은 연체율을 감안하면 운영비, 인건비 등 원가 건지기도 힘들다며 호소하는 등 작금 대부업계의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감독당국은 이러한 대부 환경을 감안하여 선량한 등록대부업자까지 민생 침해 부류로 악마화하거나 매서운 제도의 회초리를 휘둘러, 퇴출의 여지를 주는 듯한 과잉 감독 조치는 없는지 겸허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건전한 등록대부 시장이 더욱 쪼그라들면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사회적 비용이 배가될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필자가 금융자문 일을 하다보면 누군가에게 119가 되어주는 대부자영업자를 많이 대하곤 한다. 그들은 감독당국에 정식으로 등록한 대부업자이다. 제도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저신용 서민들에게 부족한 임차료와 생계비 수술비 교육비 장사밑천 등 긴급자금을 따듯하게 수혈해 주기도 한다.

한편으론 악성채무자에게서 돈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대출 심사 능력이 떨어져 종종 사기를 당해 피해자로서 언론에 회자되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악질적인 무등록 불법사금융을 일벌백계하고 퇴출시켜 사회 안전망을 튼실하게 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돈을 받으러 갔다가 도망치고 없는(일부러 갚지 않는) 악성채무자의 대문 앞에서 허탈과 절망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가난하고 착한 대부자영업자의 마음을 따듯하게 헤아려 줄 필요가 있겠다. 모쪼록 모기를 잡기 위해 큰 칼을 휘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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