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약업계는 국산 항암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내수 시장에 머물러 있어 그간 받았던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연초부터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 간의 갈등으로 대학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겨 의료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과 국내 대표 제약사 가운데 하나인 한미약품그룹이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 유한양행 조욱제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의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의 승인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EBN
▶ 유한양행 조욱제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의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의 승인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EBN

■ 유한양행, ‘렉라자’ 美 FDA 승인에 글로벌 경쟁력↑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유한양행의 국산 신약 31호인 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타닙)’가 미국 FDA 허가를 받으면서 신약 성공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특히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 이전해 출시까지 이어진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렉라자는 글로벌 제약사 얀센의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와의 정맥주사(IV) 제형 병용요법을 통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성인 환자의 1차 치료제로 미국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국내에선 이미 2021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를 받아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앞서 유한양행은 렉라자의 임상 1상을 진행하던 중인 2018년 렉라자의 글로벌 개발·판매 권리를 존슨앤드존슨 산하의 얀센에 총 1조4000억원 규모로 기술 수출한 바 있다. 이에 FDA 승인에 따라 얀센으로부터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받게 됐으며, 지금까지 얀센으로부터 수령한 누적 기술료는 2억1000만 달러(약 29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렉라자는 최근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에서 허가 권고 의견을 받아 조만간 유럽 집행위원회(EC)의 최종 허가도 이뤄질 전망이다. 렉라자 글로벌 개발·판권을 보유한 얀센은 미국, 유럽에 이어 중국, 일본에서도 품목 허가를 신청하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유한양행 측은 렉라자의 FDA 승인과 관련해 오픈이노베이션과 연구개발(R&D)의 투자 결과로 보고 제 2의 렉라자 발굴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유한양행의 누적 R&D 비용은 2011억원으로 전년 대비 48.5%나 늘어났다.

한편 유한양행의 렉라자 성공에 국내 제약사들도 미국 시장을 두드리며 블록버스터 신약을 기대하고 있다. 블록버스터는 단일 품목으로 연 매출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을 내는 의약품을 의미한다.

현재 미국 FDA 승인을 받고 미국 시장에 출시된 국산 신약은 렉라자를 제외하면, SK바이오팜의 ‘세노바메이트’, 셀트리온의 ‘짐펜트라’, 녹십자의 ‘알리글로’ 등으로 국산 신약이 미국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블록버스터 신약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제공=연합]
▶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제공=연합]

■ 의정 갈등 속 제약업계 ‘곤욕’…신약 개발에 영향

올해 2월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면서 대학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이 같은 의정 갈등으로 인해 제약사들의 임상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전부는 의사 수 부족으로 필수의료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2025학년도부터 5년간 입학 정원을 현재보다 2000명씩 늘려 이들이 졸업하는 2031년부터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추가 배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의료계에선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시작으로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까지 하는 등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주요 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평시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의정 갈등으로 의료대란이 벌어지는 와중에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미복귀 전공의 처단’이라는 내용이 포고령에 담기자 의료계의 반발감은 더욱 커지면서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으로 제약사들이 진행하는 국내 임상에도 차질이 발생하면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병원들이 휴진을 선언하면서 제약사의 영업담당 직원들은 교수, 환자들을 만나는 것 차제가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마케팅이나 세미나가 줄줄이 취소된 바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한 임상시험은 총 499으로, 이는 전년 동기(556건) 대비 10.25% 줄어든 수치다. 입원하는 환자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이에 제약사들은 연구개발을 이어나가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등 저마다 타개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제공=연합]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제공=연합]

■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모녀 VS 형제 갈등 현재 진행형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오너가(家)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1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은 딸 임주현 부회장과 함께 신약 연구개발 자금력 확보와 상속세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송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OCI홀딩스가 통합 지주사로서 한미그룹 경영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보고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이후 이뤄진 3월 정기주총에서 형제 측은 자신들을 포함한 추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해달라는 주주제안이 통과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당시 형제 측을 지지했던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였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지난 7월 돌연 모녀 측을 지지하겠다고 나서면서 다시금 경영권 갈등에 불을 지폈다. 당시 업계에서는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30% 가까이 지속 하락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마음을 돌렸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다시금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3인 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이 결성됐고, 임 형제 측과 대립하며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장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측 인사가 송영숙 회장과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를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발했고, 모녀 측인 한미약품은 임종훈 대표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동시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법정 분쟁이 이뤄지기도 했다.

결국 지난달 이뤄진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서는 양측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사실상 무승부로 끝났다. 이번 주총에서 제안된 정관 변경은 부결됐지만, 신동국 회장 이사 선임은 가결되면서 형제 측이 장악했던 이사회 구성이 5대 5로 동률이 되면서 경영권 분쟁 장기화도 불가피해졌다.

한편 오는 19일 한미약품 임시주주총회를 비롯해 내년에 있을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 등에서도 경영권을 놓고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이 같은 상황은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했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