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재정 정책에 실기(失期)가 예상되면서 내년도 소비자물가에 빨간불이 켜졌다.
내수부진과 경제침체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유력해지면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이 필수적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이 입장차를 보이면서 편성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20일 경제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내년과 내후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2%로 낮아진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적극적 경기 부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장·단기 경기 부양이 경제성장률은 물론 소비자물가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조언이다.
하지만 정부가 수급 안정, 경기 부양, 긴급 재정 필요 대응을 위한 조치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경제 불안정 상황에 따른 물가 상승이 예고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은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성장률 예상치로 각 1.9%, 1.8%를 제시했다. 이는 잠재성장률보다 0.1%포인트, 0.2%포인트씩 낮은 수준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이 내년 성장률에 -0.06%포인트가량 영향을 줄 것"이라며 "하방 압력이 커진 만큼 경기를 소폭 부양하는 정도의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13개월째 '내수 부진'이라는 진단을 내리면서 "추경 편성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성장률 하방압력은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수부진은 고용 둔화와 실질임금이 크게 늘지 못하면서 소비 지출을 감소시켰다. 실제 소매판매액 지수는 2022년 2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재정정책이 늦춰지면 지난해부터 이어지던 물가 상승 요인은 내년 더 큰 규모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실제 자연재해와 공급망 문제로 올해 내내 농산물 공급은 부족한 상황을 보였는데 정부가 추경을 통한 수급 안정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는 올해보다 더 큰 공급 부족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우려된다. 경기 침체 상황에서 정부가 추경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거나 기업의 생산을 지원하지 못하면 생산 비용 증가는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현재 식품업계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증가로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여기에 내년도 공공요금 인상과 계엄 사태로 불거진 원달러 환율의 급등도 생산비에 부담을 더하고 있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가격 상승, 환율 변동 등 외부 요인으로 물가가 오를 때, 정부가 추경으로 에너지 보조금이나 생활비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가계 부담이 커지고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추경 실기는 추가적인 문제도 야기시긴다. 정부가 물가 안정에 필요한 즉각적인 재정 투입을 하지 않으면, 기업과 소비자가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여 가격과 임금을 높이는 경향이 발생한다. 이는 실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불필요한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추경이 필요하다"며 "공급 확대와 유통망 지원 등 수급 안정은 물론 소비자 부담과 생산 비용 상승 억제로 기업의 부담까지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추경이 적시에 단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