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출처= EBN]](https://cdn.ebn.co.kr/news/photo/202504/1659252_672964_936.jpg)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상장 기업들의 기업가치 제고를 독려하고 있지만 대규모 유상증자와 쪼개기·중복상장이 거듭 발생하면서 ‘밸류업’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SDI 등이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금융감독원의 보완 요구와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규모는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처음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13.02%나 급락한 바 있다.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거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SDI도 2조원 가량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으나, 대규모 유상증자 발표(3월14일) 후 1차 발행가액 기준일인 4월 8일까지 13.58% 하락하면서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도 1조7000억원 수준으로 축소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주식수 증가로 인해 주당순이익(EPS)이 희석되고 기존 소유 주식의 주주가치가 희석돼 투자심리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복상장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최대어 기업공개(IPO)로 꼽혔던 LG CNS는 상장사인 ㈜LG의 비상장 자회사였으나, 코스피 시장에 상장돼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사가 됐다. 기존 ㈜LG 주가에 LG CNS 사업 가치도 반영돼 있었기에 LG CNS의 상장은 ㈜LG의 주가 할인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LS그룹의 계열사 줄상장 준비에도 소수주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LS그룹은 LS일렉트릭의 자회사 LS파워솔루션(옛 KOC전기), ㈜LS의 자회사가 흡수합병한 미국회사 슈페리얼에식스의 자회사인 에식스솔루션즈의 IPO 주관사 선정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상장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LS와 E1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전기차 충전업체 LS이링크, ㈜LS의 자회사 LS전선이 지분 약 53%를 소유한 LS이브이코리아도 상장 시점을 모색하고 있다.
㈜LS의 비상장 핵심 계열사인 LS전선, LS MnM, LS엠트론 등도 상장 후보군이다. 주요 핵심 계열사가 비상장회사였던 만큼 ㈜LS는 지주회사임에도 타 지주회사 대비 저평가가 덜했으나, 줄상장이 현실화될 경우 ㈜LS의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중복상장과 관련해 “투자를 하려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방법이 제한적인 만큼 어쩔 수 없다”며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 발언하면서 소수주주들의 공분을 샀다. 구 회장의 발언 이후 LS그룹 상장 주식들은 일제히 급락한 바 있다.
대규모 유상증자,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기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에 일부 공감하는 투자자들도 있지만, 오랜 기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소수주주들의 손해가 당연시 돼 왔던 만큼 소수주주들의 변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소수주주들은 상법 개정안 통과를 기다려왔다. 쪼개기·중복상장 제한 등 일반 주주의 권리가 보호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상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 의결이 필요해졌다.
한 개인투자자는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 유인, 밸류업 공시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으나 효과가 체감이 안 된다”며 “당장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디스카운트 해소에 가장 중요한 지배구조 등 상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데 누가 투자하려고 하겠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종목토론실 등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도 “상법 개정을 기다렸는데 역시 이래서 국장은 하는 게 아니다”, “주가 오르니 대뜸 알뜰 자회사 상장시키고, 대뜸 유상증자해서 주가를 끌어내리는 이게 상법상 합법인데 밸류업이 되겠나” 등의 혹평이 이어졌다.
그나마 주주행동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은 소소주주들에게 긍정적인 부분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상장기업의 40%가 최근 1년간 주주들로부터 주주관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배당확대(61.7%), 자사주 매입·소각(47.5%), 임원의 선임·해임(19.2%), 집중투표제 도입 등 정관 변경(14.2%) 등의 내용으로 집계됐다.
올해 정기주총에서도 4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총 164건의 주주제안이 상정됐고, 임원 선임 및 이사회 구성과 관련된 주주제안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주주들의 관심이 전통적인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을 넘어 이사회 구성과 기업 거버넌스 개선으로 확장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또 올해 정기주총에서 자사주 소각 관련 주주제안은 전체의 5%였고 실제 가결된 안건은 없었지만 기업들의 실제 자사주 소각 결정 건수는 최근 5년간 5배 이상 증가한 것처럼 소수주주들의 계속된 목소리가 점차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밸류업을 위해서는 법적으로 주주 보호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La Porta 등을 비롯한 연구진들은 27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소수주주 보호가 강력한 국가일수록 기업들의 가치가 높게 형성되는 반면 투자자 보호가 미흡한 국가에서는 경영진이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져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이 관찰됐다”고 지적했다.
이상호·강소현·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들도 ‘국내 상장기업 저평가에 관한 고찰’ 보고서를 통해 “한국 주식시장의 장기간 해소되지 않는 극심한 저평가 문제에 대해서는 법제적 접근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주주권리 보장과 효율적 자원배분 측면에서 M&A 압력을 더욱 강화하고 주주 행동주의를 활성화해 건설적이고 응집력 있는 관여를 통해 경영진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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