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산업부 이윤형 기자
생활산업부 이윤형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2025년도 추가경정예산안으로 1150억원을 편성했다. 공공배달앱 할인 650억원, 농축산물 할인 지원 500억원이 핵심이다. '민생 안정'과 '물가 대응'을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붙었다.

표면만 보면 적절한 방향이다. 체감 물가를 낮추고,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며,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효과가 수치로 드러나는 소비 영역에 예산을 집중하면 정책 메시지 전달이 쉽다.

하지만 이 추경은 문제의 본질에는 닿지 않는다.

최근 영남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과수원과 비닐하우스, 농업 기반 시설 전반을 불태웠다. 단순한 지역 재난이 아니라 국가 단위 식량 수급과 물가 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급 충격이다. 그럼에도 이번 추경에는 산불 피해 복구나 생산 기반 회복을 위한 예산은 한 푼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농식품부는 "기존 예산과 정책자금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담보력이 부족한 농가엔 전액보증, 보증 수수료 인하 등의 조치도 언급됐다. 그러나 그뿐이다. 피해 규모에 대한 정밀한 조사도, 복구에 필요한 예산 규모도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가 '물가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할인 정책에만 예산을 몰아주는 방식은 이번만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부터 반복돼온 정책 프레임의 구조적 문제가 이번 추경에도 여지없이 되풀이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부터 이어진 정부 주도의 할인쿠폰 정책이다. 정부는 매번 과일, 채소, 수산물 등 생활 필수품 가격을 수치상 낮추기 위해 소비자 할인에만 집중했다. 당시에도 기후 충격, 생산 원가 급등, 유통 불균형 등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 방치됐다. 정부가 선택한 건 '수치를 낮추는 전략'이었고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패턴이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추경 역시 할인 정책에는 수백억 원이 새로 반영됐지만 산불 피해 복구 같은 생산 기반 회복에는 기존 예산 운용이라는 모호한 말만 남았다. 정책의 선택지가 매번 같다는 건 정부가 근원적 문제를 직면할 의지조차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가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에서 시작된다. '생산 → 유통 → 소비'라는 구조 속에서 출발점이 무너지면 어느 단계도 안정될 수 없다. 정부가 반복적으로 '물가 안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지만 그것이 곧 '할인 정책'을 의미한다면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방치된 셈이다.

농가에 대한 실질적 복구 지원 없이, 소비자 체감 가격만 낮추려는 시도는 '디스플레이용 정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가를 잡았다"고 말하기 위한 수단일 뿐 물가를 '지속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한 해법'은 빠져 있다.

정책은 수치가 아니라, 구조를 다뤄야 한다. 이번 추경은 국민의 일상을 안정시키기 위한 예산이 아니라 당장의 체감 물가 수치만 관리하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그 방향이 반복된다면 다음 '불안정'은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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