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EBN 챗GPT가 상상해서 그린 그림 ]
[출처=EBN 챗GPT가 상상해서 그린 그림 ]

취재를 하고 기사를 보도할 때 있어 기자는, 취재 대상에서 잘잘못이 극명하게 나뉘는 경험을 한다. 행동을 한 자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자로 나뉘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도 후에는 두 가지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보도가 필요했던 이들은 사회 개선을 위한 사이다였다는 피드백을 남기고, 반대쪽의 자들은 기자에게 타인에 상처를 주는 악역의 하이에나 같다고 했다.

그렇다. 기자는 '사이다 같은 시원함'과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 그 사이 어디엔가 서 있다.

악역과 리더역을 맡은 이복현 금감원장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10일 쓴 칼럼 <'똘똘한 팀장' 같은 부서장…이복현식 세대교체 인사 결말은>에 대해 기자는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급격한 세대교체가 가져온 성장통에 대한 글이었다.

기자에게 금감원 A국장은 "아프지만 마주해야할 금감원의 진실"이라고 했고, B국장은 "후배를 가르치지 않은 선배들의 문제라기 보단, 지금 젊은 세대들의 생각과 문화가 옛날과 많이 바뀐 것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은감원·증감원·보감원 출신 할 거 없이 다들 끈끈한 동료애로 밤새 회식하다가도 새벽 출근해서 열심히 일했던 때가 있었다"고 항변했다. 함께 하는 것이 가치 있었던 시대의 얘기다.

한비자는 법치주의를 강조한 철학자다. 그는 리더라면 악한 역할과 선한 지도자의 모습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징계권과 포상권 모두 한명의 리더에서 나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반쪽자리 리더십 때문에 금방 누군가에게 제어당하기 쉽다고 했다. [출처=EBN AI 그래픽 ]
한비자는 법치주의를 강조한 철학자다. 그는 리더라면 악한 역할과 선한 지도자의 모습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징계권과 포상권 모두 한명의 리더에서 나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반쪽자리 리더십 때문에 금방 누군가에게 제어당하기 쉽다고 했다. [출처=EBN AI 그래픽 ]

그땐 후배들이 선배 어깨너머로 듣고 배우며 도제식 멘토링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작용했다. 기자가 기억하는 퇴임 C국장은 자신만의 시장조사·검사 기법을 개발해 후배를 가르치기도 했다. 몇몇 선임조사역도 피검 금융사에 맞춘 검사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것도 같다.

D국장은 "지금 과거처럼 치열하게 일하자고 하면 꼰대 취급 받고 갑질 신고 받는다"며 "팀장이 검사에서 가져오는 결과를 놓고 크게 다그칠 수 없는 시절이 됐다"고 토로했다.

기자의 글을 본 이복현 금감원장도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복현 원장은 EBN에 "급격한 인사 변화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있긴 하다. 다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회를 오랫동안 주지 않은 거라서, 지금 후배들이 (어엿한) 부서장, 팀장으로 자리 잡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라고 인사에 대해 설명했다.

또 그는 "그렇다고 60세 될 때까지 계속 같은 사람이 팀장·부서장을 하는 것도 문제라서, 언젠가는 한 번은 겪을 일이에요. 그리고 검사 받는 금융사의 부담스런 입장이 (과도하게) 투영된 부분도 있을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불만만 쏟아내는 금융사의 관행도 물론 존재한다. 금융사고가 터지면 금융사는 회사의 불건전 경영과 실적 만능주의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고 금감원 검사에서는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검사 받는 입장은 늘 피곤할 수밖에 없고 금감원을 결코 긍정적으로 봐주기 힘들다.

다시 금감원의 빠른 세대교체와 승진으로 돌아가서, 기자는 10년 전 한 선배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선배는 "'빠른 승진'은 그 사람을 끌어내리기 바쁜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설익은 상태에서 승진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식의 뒷담화가 늘 따라오기 마련이지."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배는 빠른 승진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선배는 "빠른 승진은 보상이 커지고, 업무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아지는 점이 좋고, 그러면서 더 성장할 수 있으니 개인의 삶에 있어서 도전해볼 만하다"고 했다.

빠른 승진을 한 동료를 질투했던 기자에게 선배는 "자기주도적으로 일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하는 이들이 신속하게 승진하는 데 승진이라는 왕관도 감당해야할 무게가 있지."라고 했다.

금감원은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악역을 맡은 곳이다. 자유시장 속에서 금융사의 방종을 예방하는 규제자이며 워치독이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조사를 하고 사후 검사와 징계도 매섭게 한다. 또 금감원 전체를 리드하는 금감원장도 필요악을 수행한다.

예컨대 시장엔 새 기회로 작용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재조정해야 하고, MG손해보험과 같은 부실금융사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한국 사회에 악마적 이미지를 입었지만 사실 사업 전략 변경 중 하나다.

성장성이 희박한 사업 분야를 축소하거나 정리하고, 중복성이 있는 사업을 통폐합하고, 기업의 인원을 감축해 기업 경영 능력을 총체적으로 조절한다. 이런 상황에서 돈벌이 수단과 일자리를 잃는 자도 나온다. 금감원에 악역이 맡겨진 것이다.

2368명의 임직원을 둔 금감원도 이복현 원장이 부임하면서 사실상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연공서열에 따른 순차적 승진·배치보다는 업무성과에 따른 근평을 강조했고, 능력만 있으면 선배 위로도 갈 수 있다는 걸 실제로 확인시켜줬다.

취임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현재 모습 사진.  이복현 원장은 EBN에 "급격한 인사 변화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있긴 하다. 다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회를 오랫동안 주지 않은 거라서, 지금 후배들이 (어엿한) 부서장, 팀장으로 자리 잡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라고 인사에 대해 설명했다.[출처=연합뉴스 ]
취임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현재 모습 사진. 이복현 원장은 EBN에 "급격한 인사 변화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있긴 하다. 다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회를 오랫동안 주지 않은 거라서, 지금 후배들이 (어엿한) 부서장, 팀장으로 자리 잡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라고 인사에 대해 설명했다.[출처=연합뉴스 ]

이런 금감원의 극약 처방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승진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더 많은 뒷담화를 몰고 오기 마련. 이 원장이 악역의 하이에나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조직원들이 초고속 승진의 주인공이 되려고 혈안이 됐고, 무보직자들은 전경련으로 비껴나 낮잠 자는 극단주의가 고조됐다"고 혹자는 말했다.

정체되어 있지 않은 조직, 기민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이 원장의 목적지였지만 승진이나 보직에서 탈락한 이들은 하이에나처럼 이 원장의 뒷덜미를 노린다.

금감원의 이런 불만은 금융사로 전이, 확산된다. 금융권에는 은행·보험·증권 등 총 2947곳(금융통계정보시스템)이 장사를 한다. 금융 종사자는 약 38만6288명으로 추산된다. '젊은 원장'은 금융사에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과 사업 성숙을 기대했다.

하지만 금융사는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고 실적만능주의의 끝을 보였다. 이 원장은 금융사가 공포를 느낄 정도로 '자기책임의 원칙'을 강조하고 제재했다.

한비자는 법치주의를 강조한 철학자다. 그는 리더라면 악한 역할과 선한 지도자의 모습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징계권과 포상권 모두 한명의 리더에서 나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반쪽자리 리더십 때문에 금방 누군가에게 제어당하기 쉽다고 했다.

특히 성과를 주는 것과 징계를 가하는 것은 리더의 본질적인 권한에 속한다고 했다.

이 권한이 위임될 경우 권력의 구조가 바뀌고 리더의 지휘력은 표류할 수 있게 된다. 또 징계를 하더라도 리더들은 그 악역을 누군가가 대신 맡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한비자에 따르면 리더는 악역 맡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승진자에게 포상을 하고, 과실자에게 징계를 주는 힘 모두 대칭될 때 건강한 리더십이 작동되기 때문이어서다.

이복현 원장은 공익적 역할을 부여받은 50대 중반 젊은 사회리더다. 앞으로 직면해야 할 고민의 순간은 더 많을 것이다.

누군가 이 원장을 악역으로 몬다 하더라도 그 악역만큼 조직원에 혜택을 주는 기회도 주어질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대칭 구도야 말로 가장 편안한 자연의 미학적 관계이자 동반자 구도라고 본다. 그처럼 악역과 선한 인물. 두 캐릭터가 어우러져 한 쌍을 이룰 때 가장 아름답다. 리더의 두 개 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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