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EBN AI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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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상위 10대 건설사 중 절반 가까이가 과거 사고 여파로 인해 제재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중소형 건설사들은 자금난과 미분양 증가, 공사대금 지연 등으로 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업계 전반이 생존의 기로에 서면서 산업 전체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은 2021년 발생한 광주 학동 철거 현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서울시로부터 받은 8개월 영업정지 처분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근 패소했다. 법원은 ‘당시 해체 공사에 중대한 부실이 있었고, HDC현산의 과실이 인정된다’며 서울시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HDC현산은 즉시 가처분 신청과 항소를 예고했지만, 가처분이 기각될 경우 일정 기간 영업에 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공능력평가 6위인 GS건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2022년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국토교통부로부터 토목·조경공사업에 대한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통보받았다. 현재 과징금 전환 협의와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당국의 판단에 따라 실제 영업정지 처분이 집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제재는 최근 대형 사고로 법적 리스크가 불가피한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발생한 교량 붕괴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 올랐고, 포스코이앤씨는 광명 지하터널 붕괴, 대구 주상복합 건설현장 추락사 등 잇따른 사고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향후 법적 책임과 행정처분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주요 건설사 절반가량이 영업정지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대형사가 제재 리스크에 노출된 사이, 중소형 건설사들은 경기 침체와 자금난, 미분양 적체 등으로 도산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가 늘고 있으며, 도산 행진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 올해 들어서만도 신동아건설, 대저건설, 삼부토건, 대우조선해양건설, 삼정기업, 벽산엔지니어링, 이화공영, 대흥건설 등 총 8개 건설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건설업계 전반이 흔들리면서 건설사들 사이에선 "이러다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사는 사고 하나로 수천억짜리 프로젝트 입찰 기회를 잃고, 중소형사는 착공도 하기 전에 자금줄이 막혀 쓰러진다"며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는 현재의 추세가 이어지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건설업 침체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산업 전반의 붕괴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다. 영업정지와 자금난이라는 이중고 속에 건설 프로젝트가 위축되면, 건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철근, 시멘트, 유리, 기계설비, 운송 등 관련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고, 금융시장 불안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사의 입찰 참여가 제한되고, 중소형사는 공사를 따도 착공이 어려운 상황으로 업계 전체가 '공사 멸종'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며 "건설 현장이 멈추면, 관련 제조업과 고용시장까지 동반 위축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는 "지금이 건설업계 구조 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경고하며, 정부와 업계의 긴급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 건설사들의 안전 및 품질 관리 기준을 재정비하는 동시에, 중소형 건설사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도급 대금 지급 보증 의무화와 PF 금융지원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시급히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생존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며 "건설이 무너지면 일자리와 세수, 내수 모두에 치명타가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총체적인 구조 개혁과 유동성 수혈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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