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출처=연합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출처=연합 ]

"이찬진 원장이 조직을 파악하기 위해 직원 일상인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지만 금융사들엔 새로운 저승사자일수가 있죠. 내부도 마찬가지에요. 이복현 원장(복 사장)도 처음엔 직원들에게 잘해주셨어요. 현재 임원 두 자리가 비어 있으니 언제든 인사가 날 수 있고, 그 영향에 따른 연쇄 인사에 대해 직원들이 긴장하고 있어요. 원장이 어떤 스타일인지 아직 눈치만 보고 있으니."(금감원 직원)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2주만인 지난달 28일 은행권을 만났다. 은행에 취임 직후부터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강도 높은 관리를 요청했다. 지난 1일 만난 보험권에도 역시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인 ‘금융소비자 보호’와 신속한 분쟁해결을 강조했다.

이찬진 원장은 "보험 가입은 쉬우나 보험금은 받기 어렵고 의료적으로 필수적이지 않은 치료비까지 보장하는 복잡한 실손보험의 경우 건강보험 재정 악과, 국민 과잉의료 유발 등 의료체계도 왜곡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상품이 과다하게 소비되면서 공보험, 사보험 보장 자원을 고갈 시켜, 지속 가능한 보장 용량을 초과한 상태라고 우려한 뜻으로 들린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2주만인 지난달 28일 은행권을 만났다. 은행에 취임 직후부터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강도 높은 관리를 요청했다. 이후 지난 1일 만난 보험권에도 역시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인 ‘금융소비자 보호’와 신속한 분쟁해결을 강조했다. [출처=EBN ]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2주만인 지난달 28일 은행권을 만났다. 은행에 취임 직후부터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강도 높은 관리를 요청했다. 이후 지난 1일 만난 보험권에도 역시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인 ‘금융소비자 보호’와 신속한 분쟁해결을 강조했다. [출처=EBN ]

보험업계는 앞서 금융당국이 요청한 300억원짜리 ‘상생금융’ 기금 청구서에 기강이 앞서 잡혀 있던 터라 이찬진 원장이 이날 강조한 "무관용 원칙과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강력 대응"에 대해 놀란 마음을 애써 숨겼다.

보험사 한 최고경영자는 "사보험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문제의식이 높으신 원장인 만큼 실손보험 문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신다고 봐야할 것 같다"고 나름 업계에 유리한 해석을 내놨다. 또 "앞으로 나올 방침을 봐야겠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300억원짜리 '상생금융 기금'도 20~30개 생명손해보험사가 십시일반하면 큰 부담이 없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 소상공인 필수보험 무상가입 지원을 더하게 되면서 보험사는 주식회사, 상장사, 상업보험 이전의 상호부조 역할을 더 신경 쓰게 됐다.

더 멀리, 더 넓게 보라는 이 원장의 보험 철학이 제시된 것 같다. 이 원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위 사회분과장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보건복지부, 고용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 일련의 국민 보건·금융·연금·투자시장·생활제도·물가 등을 총망라한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너희에 보험업을 하도록 인가해줬으니 국민 생활 속에 보험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2주만인 지난달 28일 은행권을 만났다. 은행에 취임 직후부터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강도 높은 관리를 요청했다. 지난 1일 만난 보험권에도 역시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인 ‘금융소비자 보호’와 신속한 분쟁해결을 강조했다.[출처= EBN ]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2주만인 지난달 28일 은행권을 만났다. 은행에 취임 직후부터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강도 높은 관리를 요청했다. 지난 1일 만난 보험권에도 역시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인 ‘금융소비자 보호’와 신속한 분쟁해결을 강조했다.[출처= EBN ]

보험 산업은 전통적으로 옛날 우리 선조들이 활용했던 두레나 계와 비슷한 상호부조를 시장화한 것이란 정의를 보였다. 보험 산업이 아무리 상업화됐어도 서로가 조금씩 힘을 모아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협력 역할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한데, 그 정신이 최근 많이 퇴색됐기는 하다.

보험계약자들끼리 돈을 모아 사고 난 사람을 돕겠다는 본업에서 보험사는 더 많은 역할을 붙여 더 많은 커미션(수수료)를 받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이 원장은 상품설계와 심사단계부터 기존의 '쓸어담기'식 영업을 하지 말고, 적당히 필요한 보장과 계약자 중심으로 자원을 집중해달라는 의미의 발언을 했다.

예컨대 과거 실손보험에 무제한적 특약을 넣을 수 있었던 것에 반해 4세대 실손보험의 도수치료와 같은 비급여 치료의 경우, 질병 치료 목적으로 연간 최대 50회까지 보장된다. 이마저도 5세대 실손보험에선 보장이 더 심플해지고 더 저렴해진다.

과거에 많은 보장으로 비싸고 무거운 보험으로 보험사가 달렸다면, 앞으로는 필요한 수준의 보장을 선별해 가볍고 슬림한 보험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보험금 줄 때도 '상쾌하게' 주라는 얘기로 들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험사가 심플한 영업을 할 수 있으려면 경영 자원을 효율화하거나 탁월한 자산운용으로 많은 마진을 남겨야 한다. 보험사 경영이 점점 더 난도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 원장이 이같은 보험 철학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가 주로 공동체와 관련된 변호사로 살아와서다.

그는 주로 시민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진보 성향 변호사단체인 민변 부회장과 공익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히 사회복지(福利) 등 사회적 행복과 이익에 관심이 큰 인물로 알려졌다.

그의 성향을 보여주는 2012년 판례가 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 서울 구로동의 땅을 빼앗겼던 농민들이 재심의 재심 끝에 51년 만에 땅을 되찾은 케이스다. 법률인 상당수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우려했고, 이길 가망성이 없다고 봤다.

이찬진 당시 변호사는 구로동 일대 농민과 그 유족 265명을 법률 대리해 몇년간 매달렸고 재재심 끝에 원고 일부 승소 판결 받았다. 박정희 군사정권에 고초를 당한 백성들이 결국 일부나마 구제된 것이다. 이찬진 원장의 이같은 면모를 보면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성품으로 보인다. (이 승소로 이 원장은 상당금액의 자산을 갖게 된 측면도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챗GPT 생성 이미지.[출처=오픈AI]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챗GPT 생성 이미지.[출처=오픈AI]

그렇다보니 직원들도, 보험사도 '우직하고 올곧은 철학'의 원장이 조금 두렵단다. 리더의 가치가 고스란히 강조될 수 있어서다.

이 원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나름대로 잘해주려 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구내식당에서 격식 없이 식사한다. 직원들은 원장의 첫 인상은 부드럽고 인자함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 사회 상당수의 리더가 자신이 경험한 것, 자신의 기준에서 좋았던 것을 최고 중요 가치로 꼽고 있다는 점이다.

전임 이복현 원장도 역할별 비서들과 젊은 직원들엔 친숙하고 무섭지 않은 인물로 각인됐지만 시간이 가면서 부서장과 임원들은 쓴소리와 야단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업무가 원장이 원했던 답을 향해 수렴되어야만 해서다.

이찬진 원장도 본인 철학이 뚜렷한 인물이다. 그의 삶이 그의 철학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 매체에 "호가호위(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하지 않고 조직원들과 토론하며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금감원의 경직된 문화를 바꾸겠다고 했다. 뜻은 알겠다.

리더의 철학이 지나치면, 금감원의 30년 넘는 '내적 일관성(internal consistency)'이 다치기 쉽다. 또 직원들이 만든 전통과 문화도 영향 받는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챗GPT 생성 이미지.[출처=오픈AI]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챗GPT 생성 이미지.[출처=오픈AI]

금융시장의 기업들이(예컨데 메리츠금융) 최근 최고경영자의 임기를 보다 장기적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관된 성장 맥락을 조직원들이 충분히 공유하고 실행해야 해서다. 메리츠금융이 '최연소 CEO' 김중현 메리츠화재 사장(1977년생)을 발탁한 것도 '10년 경영'을 내다본 결정이다. 성장과 성숙의 연결성을 위해.

문재인 정부의 윤석헌·정은보 원장→윤석열 정부의 이복현 원장→이재명 정부의 이찬진 원장. 원장마다 철학은 다 달랐다. 교수→관료→검사출신→절친, 색깔 분명한 금감원장들이 오면 성향 파악하기 바쁜 금감원과 금융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기자는 금감원이 맥락적으로, 측정적으로 신뢰할 만한 기관인지 우려될 때가 있다.

물론 금감원은 학술기관은 아니지만 규제(법)로 금융사의 행태를 검증하는 기관이다. 최소한만이라도 신뢰성과 측정성, 일관성을 보유해야 한다.

원장들의 제각기 다른 성향에 금융시장에 주는 변동성이 존재한다. 감사원이 금감원을 지금 감사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업무의 타당성이 유지되었는지를 보기 위함이다.

새 원장이 올 때마다 조직과 금융사가 눈치 보고 연줄을 찾아본다. 그런 원시적인 금융사에게 좀 더 성숙한 경영을 주문한다는 것은 좀 어렵지 않을까.

상품 팔기 급급했던 보험사도 이젠 경쟁사가 배우고 싶어 하는 기업으로 한 단계 뛰어 올라야할 차례다. 무엇보다 주주와 소비자를 함께 챙겨야할 시대가 왔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