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시민사회단체 주4일 네트워크가 '주4일제 도입 및 노동시간 단축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시민사회단체 주4일 네트워크가 '주4일제 도입 및 노동시간 단축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

정부가 국정과제인 실노동시간 단축 추진을 공식화하며 주 4.5일제 도입에 속도를 내자, 재계는 성급한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재계는 주 4.5일제가 생산성 개선 없이 도입될 경우 성장 동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노란봉투법과 정년연장 추진 등 정부의 친노동 기조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3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법제처는 연내 국회에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가칭)을 제출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에는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 세액공제 제공, 신규 채용 시 인건비 지원 등 인센티브가 포함된다. 주 4.5일제는 중앙·지방정부 시범사업을 거쳐 업종 특성에 맞는 모델을 개발,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OECD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859시간으로, OECD 평균 1717시간보다 142시간 길다. 정부는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성 문제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의하면 국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54.6달러로, OECD 평균(56.5~70.6달러)의 77%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77.9달러)의 절반, 독일(68.1달러)·프랑스(65.8달러)·영국(60.1달러)에도 못 미친다.

경총 측은 "노동생산성이 낮은 상황에서 근로시간만 단축하면 기업 경쟁력 저하와 사회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앞서 유연 근로시간제 개선 등 생산성 제고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수주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제조업이나 연구개발 중심의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업종의 특성과 현실에 맞게 근로 시간이 유연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근로시간 문제에 있어서는 노사 합의를 통해 기업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한상의 연구에서도 한국의 연간 노동생산성은 6만5000달러로, OECD 36개국 중 22위에 그쳤다. 벨기에(12.5만 달러)·아이슬란드(14.4만 달러)의 절반 수준이며, 주 4일제를 시범 운영 중인 프랑스·독일·영국과도 격차가 크다.

SGI는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 직무 만족도와 여가 확대, 소비 진작에 기여할 수 있으나,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당 생산성 향상 없이 단축 시 연간 생산 실적 감소와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도 크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금요일 오후부터 연장수당이 붙으면 소상공인이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주휴수당 폐지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기업은 이미 근로시간 단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SK 일부 계열사는 2주간 총 80시간 근무 후 금요일을 휴무로 하는 '해피 프라이데이'(생산직은 제외)를 시행하며, 삼성전자는 월평균 40시간 근무를 달성하면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는 대기업 위주로 적용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다.

노동계는 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당장 오는 26일 총파업을 예고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주 4.5일 근무제, 임금 5% 인상 등이 관철되지 않으면 일손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또 정년연장과 주 4.5일제 도입을 올해 노사 임금·단체협약 교섭 의제로 제시했던 현대차는 진통끝에 이를 제외한 임금인상, 통상임금 확대 등에 합의하며 극적인 타결점을 도출했다. 

경제계는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체계 개편과 병행되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2008년 2200시간대에서 2023년 1800시간대로 줄어 OECD 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연공 중심 임금체계와 불필요한 연장근로가 남아 있어 실질적 생산성 향상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생산성 제고 방안 없이 노동시간 단축만 앞서면 기업 경쟁력이 흔들리고 국가 경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제도 도입과 함께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는 관련 법이 입법되면 주 4.5일제 등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한 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10대 공약집’을 통해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과 주 4.5일제 도입을 통해 한국의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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