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원장이 19일 금감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법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출처= EBN ]
이복현 원장이 19일 금감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법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출처= EBN ]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주장하는 반면, 경제계에서는 일부 사례를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학계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을 두고 금융당국과 경제계 및 학계의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양상이다.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19일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은 글로벌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라며 “해외 투자자들이 자국에서도 없는 제도를 도입하라고 요구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만의 독특한 규제라는 주장은 가짜뉴스”라고도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관련 해외 사례’ 자료를 배포하며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들었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판례법을 통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인정하고 있으며, 일본 또한 최근 들어 주주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에게도 인정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도 특정 거래 상황에서 주주에 대한 의무가 인정된다는 판례가 존재한다. 

금감원은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경우 이사와 대주주의 주주 충실 의무는 주요 선진국에서도 법적·제도적으로 당연히 인정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강조했다.

경제계 “과도한 해석, 영미법 국내 적용 시 혼란”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금감원의 주장이 일부 사례를 과장하여 해석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금감원은 미국 50개 주 중 단 두 곳의 회사법을 근거로 주주 충실 의무가 보편적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며 “영미법과 대륙법은 법체계가 완전히 다르므로 이를 단순 비교해 국내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법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엄격하게 법인 실체설을 인정한다”며 “1인 기업이라 해도 1인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이 되기 때문에 미국과 우리를 같은 수평선에 놓고 판단하면 법체계상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본회의에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하며 경제 8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본회의에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하며 경제 8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경제학계는 주주 충실 의무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50개주 모든 대법원은 영국에서 연원한 형평법(Equty Law)을 적용하고 있고, 형평법에 근거해 ‘주주 전체에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판례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 필요가 없다”며 “미국 회사법이 글로벌 스탠다드이므로 이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델라웨어주와 캘리포니아주 두 곳 회사법에만 주주의무가 명시된 이유는 두 주에 법인 본사가 가장 많이 위치하고 있으며 M&A 등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 교수는 “특히 델라웨어주는 이사에 대해 가장 호의적이기 대문에 많은 글로벌 회사들이 영업지가 달라도 법인설립을 많이 하는 곳”이라며 “이렇기 때문에 델라웨어주 법원은 회사법에 주주 충실 의무를 명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법인 설립지로 선택한 델라웨어주의 주법과, 주 법원의 판례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의 다른 주된 기업들의 또 다른 소재지는 뉴욕 아니면 매사추세스 등인데 이곳은 델라웨어주보다 훨씬 더 이사회 의무를 강하게 본다”며 “형평법 적용은 법원의 재량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회사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이사 충실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법학전문교수 “해지펀드 사냥감 될 수 있어” 경고

반면 법학계에서는 개정안의 모호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의도로 만든 법들이 나중에는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의 상법개정안으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외 해지펀드들의 사냥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여러 부작용이 있는 조문들을 피해 개별적으로 주주 충실 의무를 반영한 조문들이 많이 있다”며 “지금은 문제가 생기면 그 조문을 근거로 구체적으로 따지게 돼 있지만 일반 조문으로 주주충실의무가 들어오게 되면 형사소송 민사소송이 다 들어온다. 언제 어디서 소송이 날아올지 모르게 되는데 누가 이사 자리를 맡겠냐”고 반문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지만 결국 미국과 우리나라 기업의 규모와 경제적 토대가 다른 만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도 했다.

지 교수는 “주주 충실 의무를 일반 조문에 넣었을 때 그 파장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며 “기업 사냥꾼들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국내 기업은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큰 둑도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 이 조문이 그렇다”며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측에 공개 토론을 제안한 가운데 이날 정식 공문을 전달했으나 한경협 측은 이를 거절하기로 입장을 정했다고 알려졌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