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계 언론홍보실은 이미 언론계 용병을 '수입'한지 오래다. 최근 들어 방송사와 신문가 기자들의 기업행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며 업계의 관심사로 다시 떠올랐다. [출처= EBN AI 그래픽]
기업계 언론홍보실은 이미 언론계 용병을 '수입'한지 오래다. 최근 들어 방송사와 신문가 기자들의 기업행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며 업계의 관심사로 다시 떠올랐다. [출처= EBN AI 그래픽]

용병제(傭兵)의 특징은 압도적 ‘가성비’다. 억대 연봉을 받고 축적된 역량과 인맥을 뽐낸다. 기업계 대표 용병이 언론홍보(public relations)인이다.

이미 기자와 PR인의 경계가 무너진 현재 기자는 사회의 감시 역할 '와치독'에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혹은 ‘콘텐츠 전문가’로 변모한 지 오래다.

방송기자와 신문기자는 컨텐츠를 기획하고 직접 취재와 제작에 나섰기 때문에 미디어 산업을 잘 안다. 언론계 네트워크 뿐 만 아니라 본인이 출입했던 분야와 산업과 관계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기업계 언론홍보실은 이미 언론계 용병을 '수입'한지 오래다. 최근 들어 방송사와 신문가 기자들의 기업행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며 업계의 관심사로 다시 떠올랐다.

김남희 금융증권부 차장 [출처= EBN ]
김남희 금융증권부 차장 [출처= EBN ]

보험업계에서도 간간히 경제지 출신 기자를 언론홍보실(커뮤니케이션실) 리더로 영입했다.

가장 오래 활동한 이는 경제지 출신 이성태 전 신한라이프 브랜드 담당 전무다. 알리안츠생명에서 PR인으로 첫 발을 내딛었고 한화케미칼의 커뮤니케이션 부분을 총괄한 바 있다. 현재는 새로운 미디어기업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이후 기자가 은행·증권·보험사 PR 책임자 혹은 실무자로 이동하는 것은 비일비재 했다.

그러다 '매직금융그룹' 메리츠가 전격 2019년 3월 SBS 기자·청와대 행정관 출신을 언론홍보실 상무로 영입하면서 업계에 파급효과를 미쳤다. 성과주의 최정점의 메리츠금융이 사업 퍼즐 하나로 선택한 것 중 하나는 '용병형 언론홍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PR과는 무관하지만 올 들어 메리츠금융은 은행계 금융지주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국내 2위 금융지주 지위에 올랐다. 은행 없이 증권사와 손해보험사만으로 일군 성과다)

돈을 주고 '언론대응군대'를 꾸리는 이 바람은 예전에도 존재했지만 메리츠 이후 더욱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됐다. 연봉을 주고 금세 언론 대응 조직 전력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프로금융사들은 용병제를 환영한다. 최근 보험업계 용병제는 더 뚜렷해졌다. 

당장 생각만 나는 곳도 여러 곳이다. 사업보고서와 회사 측에 따르면 어피니티와 운명적인 분쟁을 겪었던 교보생명이 한국경제 출신 장진모 부국장을 전무로 영입했다. 더벨 출신 기자(최)와 아시아경제 기자(박)도 실무진으로 발탁했다.

롯데손해보험은 보험 출입 전혜영 기자를 언론홍보 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메리츠화재는 보험(+금융당국) 출입 3개월차였던 박대한 기자를 언론홍보실 상무로 작년에 뽑았다.

한화생명도 최근 커뮤니케이션실 진용을 대거 교체했다. 한화는 기자 출신인 전성철 CJ ENM 상무를 전무로 맞이했다. 한화생명은 또 기자 출신인 남승우(전 KT&G) 부장과 기자 출신인 권일운 부장을 기용했다. 두 부장은 보험 출입 언론사 권역을 나눠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메트라이프도 기자를 홍보 실무자로 뽑았다. 한화손해보험도 PR실에 네이버 팀장 출신인 이원미 씨를 부장으로 영입했고 흥국화재에도 국회 보좌관 출신이 언론홍보 과장으로 합류했다.

최연소 대표이사를 선임한 현대해상은 역사상 처음 외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책임자로 영입했다. 브랜드전략본부장 주준형 상무(1982년생)는 보험업계 최연소 PR 임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 상무는 기자 출신은 아니지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안철수 의원 캠프를 거쳐 SK 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이런 용병들은 비용은 세지만 일시에 조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에서는 이들를 환영한다. 하지만 조직내에서 언론과 부대끼며 회사를 '엄호'했던 전통 홍보맨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좁아졌다. 

전통 홍보맨들은 사원 시절부터 PR 현장바닥에서 시작해 출입기자와 데스크, 편집국장을 단계적으로 만나며 그들의 기사·질문 공격을 '몸빵(상대의 킥을 몸으로 받는 행위)'하며 회사를 방어해왔다. 전통 홍보맨들은 조금씩 PR계를 떠나고 있다. 

영업이나 보상 등 기존업무로 배치되기도 하고 새로운 역할 맡기도 하며 희망퇴직이나 이직을 통해 조직을 떠났다. 

인재 보강 방식이 뚜렷한 만큼 굳이 내부에서 언론 대응 조직을 키워낼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깔렸을까. 오랜 시간 조직에서 육성할 필요가 없다는 의도인 것일까.

미디어 환경이 크게 변화한 게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매체 환경이 다변화되면서 과거 소수 매체를 상대로 했던 '방어 홍보'가 이제는 불가능해져서다.

인터넷매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포털을 통해 언론 노출이 많아지면서 기업과 브랜드 홍보 뿐 아니라, 위기관리 측면에서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기자 출신 PR인이 더 필요해져서다. 기자 출신들은 기업에 합류하면 바로 보도자료를 쓰고 이슈가 터졌을 때 바로 나설 수 있는 네트워킹 능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게 PR계의 설명이다.

용병 PR인이 득세하는 현재, 전통 홍보맨들도 태세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만난 한 언론홍보인은 "소수 매체·기자와 소통하며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긴밀히 전달하던 전통 홍보맨 방식에서 기업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 사업 확장 가능성 등을 새로 제시해줄 이야기꾼, 커뮤니케이터로 더 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전통홍보맨이 너무 사내정치에 줄을 대는 바람에 오너가 바라는 언론 대응 전략을 놓친 부분도 있고,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시야가 좁았다”고도 했다.

기업에선 PR 조직을 내부 징집하기 어려워 용병을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어떤 곳은 직원의 희생(?)과 불만을 줄이기 위해 용병을 쓴다고도 한다. PR업무를 지원하는 내부 직원이 드물다는 얘기다.

당장은 용병이 기업과 이슈 전환, 리스크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기업의 이야기 뼈대는 내부 선수로 채워진 홍보맨들의 진정성 담긴 대화다. 용병들은 과연 그런 대화를 얼마나 나눌 수 있을까. 

용병들은 한계가 있다. 보수를 받기 위해 싸우는 용병 PR인의 특성상, PR의 목적이나 회사 성장 방향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내부 갈등과 권력 투쟁 등이 있다.

또 근로 계약 기간을 더 연장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은 분쟁을 야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보수에 매달려 군인이 된 이들이 국가를 위해 전선에서 죽어주길 바란다면 큰 실수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용병을 평가한 말이다. '용병의 나라'로 이름을 떨쳤던 스위스가 이제 제한적으로만 쓰는 이유다. 용병이 최선은 아니어서다.

앞으로도 필요에 따라 용병 PR들이 생겨나고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내부 PR전문가 육성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흘러선 안 된다.

내부인에게 충분한 성장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PR실이 언론사를 만나느라 돈만 쓰는 애물단지로 생각하는 기업은 고객과 결코 소통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이 가장 처음 만나는 고객은 내부직원이기 때문이고, 직원이 기업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만담가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 만담가가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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