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출신자들이 민간 금융권으로 이직할 때 반드시 챙기는 게 있다. 금융당국 연락처다. 금융위원회의 경우 엑셀 파일을 통해 금융권에 공유되고, 금융감독원은 종이책 형태로 금감원 내선 전화번호부를 매년 발간해왔다. 내선 번호이면서도 부서별 담당자명이 담겨 있다 보니 금융 산업에서는 매년 당국 조직이 바뀔 때 마다 찾는 자료다.[출처=EBN ]
금융당국 출신자들이 민간 금융권으로 이직할 때 반드시 챙기는 게 있다. 금융당국 연락처다. 금융위원회의 경우 엑셀 파일을 통해 금융권에 공유되고, 금융감독원은 종이책 형태로 금감원 내선 전화번호부를 매년 발간해왔다. 내선 번호이면서도 부서별 담당자명이 담겨 있다 보니 금융 산업에서는 매년 당국 조직이 바뀔 때 마다 찾는 자료다.[출처=EBN ]

"금감원 MZ 직원들이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게 싫다네요. 자기 이름이 들어가는 게 신경쓰인대요. 공공의 효익과 편의엔 관심 없는 MZ세대 인가요? 금융권과 소통해야 하는 금융당국자인데 자기 입장만 생각하네요."

금융당국 출신자들이 민간 금융권으로 이직할 때 반드시 챙기는 게 있다. 금융당국 연락처다. 금융위원회의 경우 엑셀 파일을 통해 금융권에 공유되고, 금융감독원은 종이책 형태로 금감원 내선 전화번호부를 매년 발간해왔다. 내선 번호이면서도 부서별 담당자명이 담겨 있다 보니 금융 산업에서는 매년 당국 조직이 바뀔 때 마다 찾는 자료다.

금감원에서 전화번호부를 소량으로 인쇄하는 바람에 품귀 현상을 겪는다. 기자는 지난해 금감원 A국장으로부터 한권 겨우 구할 수 있었다. A국장 자신의 것을 양보한 거였다. 기자는 전화번호부를 15권 제본 떠 금융권 지인들과 나눴다. 희귀본 책을 좋아하는 기자도 처음 겪는 품귀 현상이었다.

특히 로펌이나 금융사의 금융당국의 제재 이슈가 커지고 이복현 금감원장의 인사가 빈번해지면서 금감원 연락처를 찾는 '열기'는 더욱 커졌다. 6개월~1년 만에 팀장과 부서장이 바뀌니, 이런 금감원을 대응해야 할 금융사 대관팀과 로펌에서 '전화번호부'를 찾기 일쑤다. 금감원 출신자들은 그동안 선후배들과 사우회를 통해 '이 책'을 확보했다. 전화번호부를 받지 못한 경우는 사우회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같이 구하기 어려웠던 전화번호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금감원은 더 이상 이 책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이유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금감원 MZ세대 직원들이 자신의 이름이 전화번호부를 통해 노출되는 게 싫어서 수년간 반대해와서다.

특히 최근엔 블라인드에 직원들이 전화번호부 발간에 문제제기 했단다. 최근 몇년간 K임원이 MZ들을 겨우 설득해 만들어왔는데 더는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금감원 고위 임원은 "이제 옛날의 금감원이 아니"라고 기자에 일축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총무국 관계자는 "기업과 공공기관들의 DX(디지털 전환) 추세로 '페이퍼리스' 문화가 확산되면서 전화번호부를 만들지 않게 됐다"고 해명했다. 

승진자들이 틈틈이 기자실에 제공하던 특식(피자 등)도 이제 예산 부족으로 쉽지 않아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이건 이해가 된다.(고삐를 죈 원장 업무 스타일을 고려하면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의 업무 효익과 편의를 돕는 금감원 연락처 제공이 이제 절단됐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어이없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든다. 금융 시장과 금융사에서도 많은 아쉬움을 제기한다. 금융당국자라면 아무리 MZ라도 '공공의 선'에는 최소한 관심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측면에서다. 

민간 금융기업이 경영하면서 생기는 애로와 궁금증을 금감원에 문의하는 길을 꼭 차단해야만 할까.

물론 공식 홈페이지에 연락처가 있다. 또 금융사 대관팀이 손품을 팔아 금감원 팀장 연락처를 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번호부를 통해 시장과 좀 더 소통하고 대화하겠다는 금감원 MZ들의 의지가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한 것은 기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전화번호부 근절로 금융위원회 MZ들도 덕을 보게 됐다. 금감원 전화번호부 뒷 편에는 부록처럼 금융위 연락처와 담당자명도 들어가 있는데 이제 그조차도 공유되지 않게 되어서다.

윤석열 탄핵집회가 열린지 두 달이 넘었다. 윤자영 충남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에 "윤석열 대통령이 기여한 것은 탄핵집회를 통해 국민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모습을 확인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참 다양하다. 2030여성들과 다수 MZ세대가 '공공의 선' 실현을 위해 '탄핵 광장'으로 모였고, 공직자인 금융당국 MZ들은 '전화번호부'에서도 꼭꼭 숨어 버렸다.

고립될 지언정 자기만의 생활을 소중히 하는 게 MZ세대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금감원은 이제 로봇처럼 기계적인 규제주의자로 전락할 것 같다. 민간 현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사라질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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