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쫒아내는 '퇴마의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악령을 제거하는 서양의 구마의식은 영화를 통해 등장했고 동양에는 퇴마의식이 있었다. 승려나 무당이 귀신을 쫒아내는 의식이 미디어를 통해 심심찮게 나왔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귀신이 있다는 관저에 입주하면서 승려를 불러다 퇴마의식을 치렀다고 했다. 그는 "귀신보다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언론은 '총리는 정권유지와 지지율을 더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관측했다.

사실 귀신과 악령은 실체가 입증되지 않은 그 무엇이기도 하다. 난데없는 뜬소문일 수 있고, '카더라~'로 존재하는 입소문 내지는 풍문과 같다. 또 '썰'처럼 세간에 떠도는 그 무엇이자, 이미지 및 분위기이기도 하다.

최근 만난 금융권 인사가 말했다. 그는 "우리은행의 한일은행파와 상업은행파의 대결구도가 아직도 금융권에 귀신처럼 떠돌고 있다"고 했다. 그는 "통합 공채가 입사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미디어에서는 올드보이(우리은행 옛 사람:OB) 이야기만 듣고 한일파와 상업파의 사내 정치가 아직 존재한다고 스토리를 푼다"고 토로했다.

그는 "제발 이제 현직자의 진짜 이야기까지 듣고 우리은행의 종합적이고 실체적인 이야기를 써 달라"고 호소에 가깝게 말했다. 그날 우리은행은 우리은행 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동우회를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풍문처럼 떠도는 계파갈등을 시스템으로 잠재우겠다는 의지다.

서사만큼 '꿀잼'인 컨텐츠가 어디 있을까. 여의도와 금융권에서 몇년간 주목을 끌었던 이야기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금감원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렸던 검사출신 이복현 금감원장은 사실 윤석열 정권 때문에 '금융황제'로 데뷔했다. 동화 같은 얘기다. 그런 그가 신년 들어 새로운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는 동화의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했다.

지난 6일 출입기자들을 만난 이복현 원장은 윤 대통령이 사법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정을 통솔하고 있는 만큼 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관련한 사법적 부담을 떠안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일명 F4)는 경제·금융에 정치가 이른바 '빙의'될까 우려하며 국가경제 대외신인도를 지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상계엄령 사태로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매일같이 쏟아졌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막스 베버를 인용하며 현 시국을 묘사했다. 막스 베버는 '근대화 움직임은 탈주술과 같다'고 했다. 김용옥 선생은 우리 국민이 계엄군에 맞서 저항한 움직임을 '탈주술을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 윤석열 정권은 이해할 수 없는 무속신앙과 주술적 행위로 뉴스를 도배하면서 영화와 같은 '주술정치'를 떠올리게 했다.

김용옥 선생은 이번 계엄령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근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딘가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실의 민낯을 마주하란 얘기다.

신년을 맞이한 지 8일째다. 금융권에선 을사년에는 새로 거듭나겠다는 일성을 표명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의 기본, 경제의 본래 기능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쏟아냈다. 정권과 관치라는 주술에서 풀려나 금융의 진면목을 펼치겠다고 했다. 

김남희 EBN 금융증권부 차장
김남희 EBN 금융증권부 차장

금융의 본연 기능은 '실체가 있는 컨텍트'다. 돈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공급하고, 저축이나 투자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체제다.

또 가계, 기업, 정부, 금융기관 등 경제주체들이 소비나 투자와 같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금액·시간·장소·국경·주체를 초월해 여유자금이 수요처를 향해 흘러가는 현상이자 실질이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은 공공재"라며 금융권에 운신의 폭을 주지 않았다. 물론 역할 측면에서 보면 금융은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정권의 '입'만 보고 있는 금융은 주술과 마법에 걸린 '귀신의 집'일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지금이나마 경제와 금융을 독립적인 시스템으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정치적이고 그럴싸한 레토릭이 아닌 제도와 시스템으로 금융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금융이 독과점 체제로 성장한 것은 제도가 설계한 방향에 기초한다. 금융산업이 올망졸망 골목상권으로만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당국은 법과 제도 대신 강한 발언을 앞세우는 습관부터 정리해야 한다. 꿍꿍이 속내를 가진 금융당국을 좋아할 시장 플레이어는 결코 없다. 올해는 터놓고 대화를 많이 하길 바란다. 어떤 정권이 오든 금융을 제물로 삼지 않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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